교양이나 학문을 익히지 못한 인간을 부르는 말인 오하(吳下)의 아몽(阿蒙)
오(吳)나라 손권(孫權 182-252)의 부하 가운데에 여몽(呂蒙 178-219)이라는 무장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말할 수 없는 망나니여서 언제나 수도의 한길로 나와 등치거나 강탈질을 일삼고 있었다. 그 후 군대에 들어갔는데 교양적인 면모는 전혀 갖추고 있지 않았지만 완력이 뛰어나고 무술이나 전투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두각을 나타내어 어느 틈엔지 일군(一軍)의 장(將)이 되었다.
주군(主君)인 손권(孫權)은 몰취미하고 풍류를 모르며 성실하고 정직한 여몽(呂蒙)을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이 사나이에게 학문이나 교양을 익히게 하면 더 큰 인물이 되리라 생각하여 한 번은 이렇게 권유하였다.
"자네도 일군(一軍)의 장(將)이 되었지만 더욱 뻗어나가고 싶으면 무예(武藝)뿐만 아니라 병법(兵法)이나 학문도 익혀야 하네."
"아무래도 군무(軍務)에 종사하느라 너무 바쁩니다. 책을 읽거나 글 공부를 할 틈이 없어요." 공부하기를 싫어했던 여몽(呂蒙)이 변명을 하자 손권(孫權)은 화를 내며 말하였다.
"학자가 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지휘관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교양을 익히면 되는 거야. 아무리 바쁘다고 한들 나만큼이야 하겠나. 나는 젊은 시절에는 진중(陳中)에서 고전(古典)을 모조리 독파하였네. 오(吳)나라를 다스리는 몸이 된 후에도 중요한 병서(兵書)와 사서(史書)는 멀리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 자네는 아직 젊고 머리도 좋으므로 틀림없이 공부한 만큼 얻는 바가 있을 거야. 태만해서는 안돼."
주군인 손권(孫權)의 말에 발분(發奮)한 여몽(呂蒙)은 그때부터 병법(兵法)이나 일반 고전(古典)을 필사적으로 공부하여 결국 유학자로서 성공할 정도로 많은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
어느 날 주유(周瑜)를 대신하여 전선의 사령관이 된 노숙(魯肅)이 임지로 향하는 도중에 여몽(呂蒙)을 방문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야기해 보니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여몽(呂蒙)은 견식(見識)도 높고 오히려 노숙(魯肅)보다 나아 보였다.
"재평가해야겠군!"
노숙(魯肅)은 여몽(呂蒙)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자네는 몰취미하고 풍류(風流)가 없는 사나이여서 학문이나 교양과는 거리가 먼 줄 알고 있었는데 그토록 공부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네. 언제까지나 오(吳)나라의 성 밑에 틀어박혀 있을 여몽(呂蒙)으로 취급할 수는 없겠는걸." 하고 감탄하며 칭찬하자
"선비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헤어진 지 3일이나 되면 선입견 없이 상대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고 여몽(呂蒙)이 대답하였다. 언제까지나 '예전의 나'라고 생각해 주면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아몽(阿蒙)의 아(阿)는 친한 사람의 이름에 붙이는 애칭이기도 하고 여몽(呂蒙)의 어릴적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오지(吳誌)의 여몽전(呂蒙傳)에서 유래되는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이라는 말은 교양이나 학문을 익히지 못한 인간을 부르는 말이다. 이천 년 전의 옛날이나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치 않는 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변하는 것이다. 만나지 않고 있어도 놀라우리만큼 성장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빠른 속도로 진보하고 성장해 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때로는 창피를 당하게 된다.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상대방은 저 멀리 나아가고 있고 자기 혼자만이 뒤에 처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나이 많은 이들이 흔히 있는데 대개 비판자 자신이 한 발짝이든 두 발짝이든 뒤떨어져 있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子曰
後生可畏
焉知萊者之不如今也
공자가 말하기를
젊은 후배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장래의 그들이 오늘의 우리만 못할 거라고 어찌 말하겠는가.
이 시대의 역사 흐름은 매우 속도가 빨라졌다. 이러한 시대의 조류를 빠르게 인식하고 한 발 더 앞서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시대는 광속의 시대를 추구하며 달리고 있는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세대의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세대는 어떤 역할로 오늘의 세대를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할 일이지 좌지우지 하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옛 습관을 가지고 현대를 주도하려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기득권을 내려 놓으라. 요즈음의 정치가들은 공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하(吳下)의 아몽(阿蒙)은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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