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공을 이루어도 그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고사성어 장량불거(張良弗居)

박남량 narciso 2019. 8. 22. 15:56


공을 이루어도 그 공에 머물지 않는다는 고사성어 장량불거(張良弗居)



도가(道家) 4대 경전에 추숭된 經籍 통현진경(通玄眞經)이라는 문자(文子)의 미명(微明)에 나온다.

"事者(사자) 難成易敗(난성이패) 名者(명자) 難立易廢(난립이폐)
일은 이루기는 어려우나 그르치기 쉽고, 이름은 세우기는 어려우나 무너뜨리기 쉽다."

수많은 사람들이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고, 오늘날에도 숱한 사람들이 그런 전철을 밟고 있다. 열세였던 유방(劉邦 BC247-BC195)이 항우(項羽 BC232-BC202)를 누르고 천하를 차지하는 데에는 한초삼걸(漢初三杰)이라는 명장 한신(韓信)과 행정가 소하(蕭何) 그리고 지략가 장량(張良)의 공헌이 특히 컸다.

이 셋 가운데 한신(韓信)은 제후왕에 봉해졌으나, 자신의 지략과 군사력을 숨기지 않고 뽐내다가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포박되어 살해 당했다. 이와 달리 장량(張良)은 한(漢) 제국이 일어선 뒤에는 조용히 물러나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장량(張良)은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今以三寸舌爲帝者師(금이삼촌설위제자사) 封萬戶(봉만호) 位列侯(위열후) 此布衣之極(차포의지극) 於良足矣(어량족의) 願棄人間事(원기인간사) 欲從赤松子游耳(욕종적송자유이)
이제 세 치의 혀로 황제의 군사(軍師)가 되어 식읍이 1만 호에 이르고 지위가 제후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는 평민으로는 최고의 지위로 나 장량(張良)은 만족한다. 바라건대 세속의 일은 떨쳐버리고 신선 적송자처럼 노닐고자 한다."

"事成而身不伐(사성이신불벌) 功立而名不有(공립이명불유)
일이 이루어지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공을 세우면 이름을 얻지 않는다."

이 말대로 장량(張良)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고 이름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유방(劉邦)이 식읍 3만 호를 내리려 했을 때 고작 1만 호의 머물(留) 땅으로 만족하고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그 덕분에 자손들도 편안하게 잘 살았고, 그의 행적도 '사기(史記)'에 '留侯世家(유후세가)'로 남아 길이 명성을 떨쳤다. 그가 장자방(張子房)으로 일컬어지며 높이 평가되는 것은 뛰어난 지략과 공적 때문만은 아니다. 성이불거(成易弗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량(張良)은 최고의 자리에서 퇴진함으로써 말년을 아주 편하게 보낸 것이다.


문자(文子)의 미명(微明)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장량불거(張良弗居)이다.

장량불거(張良弗居)란 공(功)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