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거둬들이는 방법을 알고 쓰는 법도 안다는 고사성어 지렴지산(知斂知散)

박남량 narciso 2017. 4. 5. 14:49


거둬들이는 방법을 알고 쓰는 법도 안다는 고사성어 지렴지산(知斂知散)



"戶曹掌錢穀之出納 省費節用 固其宜也. 然知斂而不知散 當用而不知用 亦非也
(호조장전곡지출납 성비절용 고기선야 연지렴이불지산 다용이불지요 역비야)

호조는 돈과 곡식의 출납을 맡았으니 절약할 곳을 살피는 것은 진실로 당연하다. 그러나 거두는 것만 알고 흩어서 쓸 줄을 모르며, 당연히 쓸 데에 쓸 줄을 모르는 것은 잘못이다."

세종실록에 실린 글이다. 세종대왕의 재정운영 원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세종대왕은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는 것을 중시했지만, 그렇다고 나라 곳간에 곡식을 쌓아놓고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모른 체하거나 나라의 제사 등 예법을 허술히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 살림 맡은 관리들은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을 최대한 늘려서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는다. 거둬들이는 방법[斂]만 알고 흩어서 쓰는 법[散]을 모르는 관리와 거둬들이는 방법[斂]만이 아니라 흩어서 쓰는 법[散]도 아는 관리가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전자는 유중현(柳廷顯 1355-1426)이며 후자는 유중현(柳廷顯)에 이어 호조판서로 재직한 안순(安純 1371-1440)이다.

유중현(柳廷顯)은 세자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을 폐하고 세종(世宗)을 임금으로 세운 일과 세종(世宗)의 장인인 소현왕후의 아버지인 심온(沈溫 1375-1419))을 국문하여 죽인 인물로 유명하다. 세종(世宗)이 원수와 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중임을 맡긴데는 유중현(柳廷顯)이 건국초 조선에서 제일가는 재정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후자인 안순(安純)은 사헌잡단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궁녀 한 명이 죄를 범하자 태조는 당시 대사헌이던 조박(趙璞)에게 궁녀를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조박(趙璞)이 안순(安純)에게 처형할 것을 명했으나 안순(安純)은 "사헌부는 형관이 아니며 더구나 그 사람의 죄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처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조박(趙璞)이 안순(安純)에게 재차 요구하였으나 "사람은 한번 죽으면 그만인데 극형으로 처리할 수 없으니 우선 유사(有司)에 명해 심문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일화가 암시하듯이 안순(安純)은 강직한 인물이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유정현(柳廷顯)은 오랫동안 호조를 맡고 있으면서 출납하는 것이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색하여 남을 도와주는 일이 없고, 동산에 있는 과일도 모두 시장에 내다 팔아서 조그마한 이익까지 계산했다. 그는 휘하의 집사 중에서 장리(長利: 돈이나 곡식을 봄에 꾸어주고, 빌려준 것의 절반 이상을 가을에 받음) 준 돈을 다 받아들인 자에게 상을 주었으며, 심지어 역승(驛丞)의 임명까지 관여해 칠만여 석이나 곡식을 쌓아둘 만큼의 부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시대의 또다른 살림꾼으로 안순(安純)이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그도 유정현(柳廷顯)과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열쇠를 부인에게 맡기지 않아서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함길도 감사 때  고을에 큰 기근이 들자 그는 먼저 고을 읍내 수령의 청사 앞에 움집과 임시가옥을 짓고 수령으로 하여금 직접 감독해 밥과 죽을 먹이게 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이웃 고을의 기민들도 가리지 않고 구휼하여 기근을 효과적으로 구제했다. 그는 거둬들이는 방법[斂]만이 아니라 흩어서 쓰는 법[散]도 아는 관리였다.


세종(世宗)이 안순(安純)에게 호조관리들을 질책하며 제시된 인용문에서 유래하는 고사성어가 지렴지산(知斂知散)이다.

지렴지산(知斂知散)이란 거둬들이는 방법[斂]을 알고, 흩어서 쓰는 법[散]도 안다는 뜻이다.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방법뿐 아니라 제대로 쓰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꽃사진: 꽃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