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행동은 빠르고 시의(時宜)에 맞아야 한다 그런데 시위소찬(尸位素餐)은 누구일까?

박남량 narciso 2014. 7. 28. 10:08



행동은 빠르고  시의(時宜)에 맞아야 한다 그런데 시위소찬(尸位素餐)은 누구일까?



위지(魏誌)의 원소전(袁紹傳)에 나오는 나오는 글이다.
저수(沮搜)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천자(天子)를 영입하는 것은 대의명분에 맞는 일입니다. 그리고 시기에도 맞는 행동입니다. 빨리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기게 됩니다. 무룻 모든 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며 행동은 빨리 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어서 결단을 내리십시오』그러나 원소(袁紹)는 이 의견을 받아들일 만한 배짱이 없었다.

원소(袁紹)는 4대 동안 계속 삼공(三公)을 배출하여 사세삼공(四世三公)이라 불린 여양(汝陽)의 원씨(袁氏) 가문으로 후한의 중기 이후 화북(華北)의 최고 명문으로 일컬어졌다. 원소(袁紹)는 이 가문의 적자(嫡子)로서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말을 듣던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원소(袁紹)의 가장 큰 결점은 판단이 느리고 결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저자 나관중(羅貫中)도 원소(袁紹)를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했다.

조조(曹操 155-220)와 원소(袁紹 ?-202)는 결단이라는 점에 있어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 이것이 천하를 가름하는 관도(官渡)의 결전에서 승패를 결정하게 되는데, 조조(曹操)와 원소(袁紹)의 차이는 정치 무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군웅이 할거하는 난세에 천하를 호령하기 위해서는 한나라 황제를 받드는 것이 대의명분상 철칙이다. 그런데 이 철칙을 인식하는데 조조(曹操)는 머리 회전이 빠르고 원소(袁紹)는 판단이 둔했다.

원소(袁紹)는 아무런 실권도 없는 한나라 헌재(獻帝 181-234)를 받들지 않더라도 자신의 실력만으로 제후를 누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수(沮搜)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曹操)는 기민하게 조정을 받든다는 명분을 이용하여 헌재(獻帝)를 맞아들였다. 그 결과 화북(華北)의 여러 장군이 조조(曹操)에게 모여들고 원소(袁紹) 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순욱(筍彧)과 저수(沮搜)와 전풍(田豊) 등 많은 인재를 떠나게 하고 광대한 영지를 잃은 끝에 영토도 병력도 적은 조조(曹操)에게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삼공(三公)은 무엇인가? 후한(後漢) 시대의 최고 관직으로 사도(司徒), 사공(司公), 사마(司馬)를 일컫는 말이다. 사도(司徒)는 민사, 교육의 최고 책임자이며, 사공(司公)은 경제, 토지의 최고 책임자이고, 사마(司馬)는 군사의 최고 책임자를 말한다.

고사성어에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말이 있다.

시위(尸位)의 시(尸)는 시동(尸童)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혈통을 이은 어린아이를 조상의 신위(神位)에 앉혀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때 신위(神位)에 앉아 있는 아이가 시동(尸童)이다. 영혼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접신(接神)하여 그 아이의 입을 통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게 하려는 원시적인 신앙에서 생겨난 관습이었다. 시위(尸位)는 그 아이가 앉은 자리이다.
시위(尸位)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남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素)는 맹탕이라는 의미이므로 소찬(素餐)은 공짜로 먹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고 하면 분수에 벗어 난 높은 자리에 앉아, 하는 일 없이 공으로 녹(祿)만 받아먹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된다.

누구일까?
국민들은 알고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