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탐욕은 믿을 수 없는 희망이다

박남량 narciso 2014. 10. 17. 10:15


탐욕은 믿을 수 없는 희망이다




탐욕은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속에서 양심이 이상하게 꺾여 다가올 미래에 엄청난 그 무엇이 있는 것처럼 욕심을 품게 되는 것을 말한다. 탐욕은 신기루와 같다. 신기루는 뜨거운 열이나 찬 기운 때문에 대기 속에서 빛이 이상하게 꺾여 공중이나 땅 위에 어떤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탐욕도 무언가 엄청난 것이 내 손 안에 들어올 것 같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먹을 것만 생기면 양보를 하지 않고 서로 먹겠다고 으르릉거렸다. 그러니까 먹는 것만큼은 도무지 양보하지 않는 묘한 부부였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맛있어 보이는 떡 한 접시를 보내오자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남편이 말했다.
『이 떡을 둘이 먹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니 한 사람이 먹도록 합시다.』
『그럼 당신이 먹겠다는 거예요?』
부인이 성난 목소리로 따지자 남편이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과 내가 이 떡을 앞에다 놓고 먼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먹도록 합시다.』

부인이 떡을 남편과 자기가 앉은 중간 지점에 놓았다. 서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떡을 먹을 수 있는 내기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는데도 두 사람은 돌미륵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둥근 달이 떠오른 깊은 밤이 되었는데도 두 사람은 떡만 내려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슬며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도둑이었다. 밖에서 집안 동정을 살펴보아도 방안에 기척이 없자 도둑은 집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들어온 것이다. 방안에 들어온 도둑은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내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떡에 신경을 쓰느라 도둑이 들어왔는데도 눈도 깜짝 않고 떡만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둑은 방안의 패물을 챙기고 나서 무슨 생각에선지 떡그릇에 손을 뻗어 떡을 집어들었다. 그때 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도둑이 쏜살같이 도망을 가자 그제야 남편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떡은 내 것이야!』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 성서(야고 1,15)에 나오는 말씀이다. 욕심이야말로 믿을 수도 없는 희망이다. 믿을 수도 없는 희망 때문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버릴 수 있겠는가? 장래에 찾아올 커다란 이익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진시황(秦始皇 BC259 - BC210)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황제이다. 그도 나이가 많아지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서시(徐市)라는 사람이 나타나 반가운 말을 했다.
『제가 동남동녀(童男童女)를 이끌고 바다를 가로질러 삼신산(三神山)에 있다는 불사약(不死藥)을 구해 오겠습니다.』

서시(徐市)를 보낸 진시황(秦始皇)은 죽음에 대한 걱정은 잊고 정치에 전념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살던 궁전이 작다며 아방궁(阿房宮)이란 큰 궁궐을 짓지도 했다. 그러나 서시(徐市)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덧 나이 50이 된 진시황(秦始皇)은 전국 순시의 길을 떠났다가 평원진(平原津)이라는 곳에서 병을 얻어 나라를 세운 지 37년이 되던 해에 사구평대(沙丘平臺)라는 곳에서 죽었다.

진시황(秦始皇)의 죽음을 비밀에 붙이고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돌아올 때는 한여름이어서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생선을 시신과 함께 실어 생선냄새와 구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진시황(秦始皇)은 여산(驪山)이라는 곳에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명심보감에 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 라는 진리의 글이 있습니다. 백년을 사는 사람이 없는데도 사람은 부질없이 천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탐욕 때문에 몸과 말과 생각으로 갖가지 악을 지어 죽은 후에는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는 부처의 탐욕의 재앙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나친 욕심은 다만 부질없을 뿐입니다. 나눔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웃님의 지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