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칼날이 닿자마자 베어지듯이 쉽게 해결된다는 고사성어 영인이해(迎刃而解)

박남량 narciso 2017. 5. 17. 08:19


칼날이 닿자마자 베어지듯이 쉽게 해결된다는 고사성어 영인이해(迎刃而解)



심국시대(三國時代) 막바지 무렵 진(晉)나라 두예(杜預)가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으로 임명되어 형주(荊州)지역의 군사를 맡게 되었다. 명을 받아 오(吳)나라를 쳐 열흘이 못 되어 장강(長江) 상류의 대부분을 점령하여 위세를 떨치니 많은 주(州)와 군(郡)에서 모두 투항하여 왔다. 승리의 기세를 타고 추격에 나서자 수하 장수들이 만류하여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오나라는 오래전에 나라를 세워 완강한 적이므로 한번에 다 점령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여름철에 강물이 넘치고 전염병이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큽니다."

"무슨 말인가? 연전연승으로 사기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 왕성한 기세로 친다면 數節之後(수절지후)  皆迎刃而解(개영인이해)  마치 대나무를 쪼갤 때 결 몇 개만 쪼개면 아래는 칼로 가볍게 치기만 해도 모두 쪼개지는 것과 같이 될 것이네."

두예(杜預)는 전군을 몰아 공격하였다. 진(晉)나라 군대는 오(吳0나라의 도읍인 지금의 난징 건업(建業)을 점령하고 오왕(吳王) 손호(孫晧)의 항복을 받았다. 이로써 진(晉)나라는 마침내 삼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중국을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한 영인이해(迎刃而解)한 18명의 농민 이야기가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의 길로 나가도록 이끌어낸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 대륙 전역을 장악하게 된 것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실행하여 다수 농민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지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인민공사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영농의욕을 송두리째 꺾어 농업생산이 크게 줄고 농촌경제는 나날이 피폐하게 되었다.

안후이 성의 한 작은 마을 샤오강촌(小岡村)의 용감한 농민 18명은 겨울 목숨을 걸고 법을 어겨 농지를 나누어 농사를 짓기로 하였다. 그 결과 농사는 공동으로 지은 것보다 소출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당시 보고를 받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지켜보자며 관망하였다. 그러나 덩샤오핑(鄧小平)은 농촌의 족쇄였던 인민공사를 폐지하고 18명의 농민들이 행한 농가도급경영제를 합법화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오늘날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체제가 굳혀진 것이다.  


방현령(房玄齡)이 쓴 진서(晉書) 두예전(杜預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영인이해(迎刃而解)이다.

영인이해(迎刃而解)는 대나무의 첫마디를 잘 쪼개면 대나무 전체가 쉽게 쪼개진다는 의미로 칼날이 닿자마자 베어지듯이 쉽게 해결된다는 말로 먼저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면 그와 관련된 기타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의 장애와 어려운 점을 찾아 잘 처리하면 나머지는 순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꽃사진: 만리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