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淸廉)하다는 소리가 사방으로 알려진다는 고사성어 청성사달(淸聲四達)
청렴(淸廉)이란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다란 말이다. 현실에서 이를 충실히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로부터 이를 준수한 관리는 살아서는 염근리(廉勤吏)로 존경 받으며, 죽어서는 청백리(淸白吏)라는 영광을 누린다.
干囑不行焉(간촉불행언)
可謂廉矣(가위렴의)
淸聲四達(청성사달)
令聞日彰(령문일창)
亦人世之至榮也(역인세지지영야)
"청탁이 행하여지지 않는다면 / 청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청렴하다는 소리가 사방에 퍼져서 / 아름다운 소문이 날마다 빛나면 / 이 또한 인생의 지극한 영광인 것이다." 조선 후기 중농학파 실학자의 거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집필한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적힌 말이다.
청렴(淸廉)하면 떠오르는 인물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을 비롯해 방촌(厖村) 황희(黃喜 1363-1452)와 동포(東浦) 맹사성(孟思誠 1360-1438) 같은 분들의 청빈한 삶은 후세로 하여금 오늘에도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한다.
청렴(淸廉)과 관련된 일화를 남긴 분들이 여럿 있다.
조선 중종때 지지당(知止堂) 송흠(宋欽 1495-1547)이라는 분은 새로 부임해 갈 때 세 마리의 말만 받았으니, 한 필은 본인이 탈 말, 어머니와 아내가 탈 말이 각각 한필 그래서 총 3필을 받아 그 당시 사람들이 송흠(宋欽)을 삼마태수(三馬太守)라 불렀으니 청백리(淸白吏)를 가리킨다. 그리고 우의정이라는 벼슬에 있음에도 장맛비가 쏟아져 천장이 새어 방안으로 비가 쏟아지는 초가집에 살아 우산정(雨傘亭) 또는 우산각(雨傘閣)이라는 지명을 남긴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하정(夏亭) 류관(柳寬 1346-1433)도 청백리(淸白吏)로 소문난 인물이다. 또 40여년간 정승을 지내는 동안 초가집 생활을 영위하자 그의 검소함에 감동한 인조는 친히 그의 청빈한 삶을 보고 느끼라는 뜻을 지닌 관감당(觀感堂)을 지어 집과 토지를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에게 하사하였는데 그도 청렴(淸廉)과 관련되어 타의 귀감이 될 만한 청빈함으로 그 명성을 얻고 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청성사달(淸聲四達)이다.
청성사달(淸聲四達)이란 청렴(淸廉)하다는 소리가 사방으로 알려진다는 뜻이다. 淸聲四達 令聞日彰((청성사달 령문일창)은 청렴한 소리가 사방에 이르고 아름다운 소문이 날마다 빛난다는 말이다. 청렴이 자신을 이루는 재산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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