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조조의 마음을 음악으로 사로잡은 채염 이야기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 절묘호사(絶妙好辭)

박남량 narciso 2018. 8. 10. 14:14


조조의 마음을 음악으로 사로잡은 채염 이야기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 절묘호사(絶妙好辭)



중국의 서 동관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곳에 풍성한 숲이 있다. 그 숲에 둘러싸여 있는 장원은 남천이라 부르는 지방의 유명한 토지로 채옹(蔡邕)의 영지다. 채옹(蔡邕)은 그곳 영주인 동시에 문호이자 교양인으로서 추앙받고 있다. 채옹(蔡邕)에게는 15살이 되는 채염(蔡琰)이라는 귀여운 딸이 있었다.

시대는 난세였다. 채염(蔡琰)이 20살이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한 성실한 호족의 젊은이 위중도(衛仲道)와 결혼하게 되었다. 혼례가 있는 날 흉노의 거친 패거리 수십 명이 무기를 들고 나타나 딸을 납치했다. 그래서 채염(蔡琰)은 흉노족의 2인자인 좌현왕(左賢王)의 측실로 살았다. 채염(蔡琰)은 망향의 염을 품고 고향을 그리며 곡을 작곡하여 피리로 불었다.

몇 년 후 조조(曹操)가 있는 도시 하도에서 유행하고 있는 노래가 있었다. 조조(曹操)는 누가 작곡한 노래인지 알고 싶었다.
"참으로 슬픈 노래입니다. 결혼식 날 납치당해 흉노 좌현왕의 측실이 된 채염의 곡이라고 합니다."
신하가 아뢰었다. 조조(曹操)는 그녀가 대문호 채옹(蔡邕)의 딸임을 알고 크게 놀랐다.

밝고 명랑하던 소녀가 이처럼 슬픈 곡을 작곡한 연유를 안 조조(曹操)는 좌현왕(左賢王)에게 사자를 보내 채염(蔡琰)을 천금에 사겠다고 하였다. 놀란 것은 좌현왕(左賢王)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조조(曹操)가 원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좌현왕(左賢王)은 돈은 받지 않고 정중하게 그녀를 돌려보냈다.

채옹(蔡邕)의 뒤를 이어 채염(蔡琰)은 장원을 잘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曹操)가 방문하였는데 방문을 둘러보다 이상한 것이 눈에 띄어 '저것이 무엇이오.'하고 물었다.

"조아(曹娥)의 비(碑)입니다. 후한 4대 소제(小帝) 때 조한이라는 무용을 잘 하는 무당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5월 5일 술에 취해 춤을 추다 배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당시 그의 딸 조아는 14살이었는데 7일간 울다가 물속에 뛰어들어 아버지의 시체를 등에 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현령(縣令)의 도상(度尙)이 약관 20세의 수재 한단순(邯鄲淳)을 시켜 그녀의 효행을 비문에 남기에 하였습니다. 그 비(碑)는 무덤 옆에 세워졌습니다. 아버님 채옹(蔡邕)도 빛이 바랜 글자를 알아볼 수 없어 손으로 더듬어 읽고는 비(碑)뒤에 8개의 문자를 크게 썼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돌에 새겨놓은 것이 이 척본(拓本)입니다."

黃絹幼婦  外孫韲臼(황견유부 외손제구)

무슨 뜻일까? 아무도 그 뜻을 풀지 못하자 조조(曹操)의 책사인 양수(楊修)가 풀려 해 조조(曹操)도 같이 생각하였다.
"이것은 은어(隱語)로군. 나는 풀었네."
조조(曹操)는 8개의 문자를 4로 나누어 黃絹(황견)은 색이 있는 포이므로 절(絶)이고, 幼婦(유부)는 소녀의 뜻이라 묘(妙)라고 풀어내자  양수(楊修)는 外孫(외손)은 딸의 아이이므로 호(好)이고, 韲臼(제구)는 신맛이 나는 음식을 담은 그릇이라 사(辭)라고 풀었다. 이에 절묘호사(絶妙好辭)가 되니 모두 조조(曹操)와 양수(楊修)의 기지를 찬양하였다.

조조(曹操)가 채염(蔡琰)에게 피리 한 곡을 청하자 그녀는 조아(曹娥)의 곡을 불었다. 조조(曹操)는 그 애절한 노래 가락 속에서 그녀의 과거의 비참함과 두고 온 자식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엿들을 수 있었다. 조조(曹操)는 그녀의 집을 나와 전쟁터로 갔고 그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삼국지(三國志)의 피리 부는 소녀 채염(蔡琰)의 이야기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절묘호사(絶妙好辭)이다.

절묘호사(絶妙好辭)란 아주 묘하고 좋은 말이란 뜻으로 더 없이 좋은 문장이라는 말이다.
<꽃사진: 인도의 신 이름 익소라(Ix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