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성어 단기천리(單騎千里)

박남량 narciso 2015. 6. 11. 12:28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성어 단기천리(單騎千里)





유비(劉備 161-223)의 군대가 서주(徐州) 가까이에 있는 소패성(小沛城)에서 조조(曹操 155-220)의 군대에 패하자, 유비(劉備)는 원소(袁紹 ?-202)에게로 도피하고 유비(劉備)의 두 부인(夫人)을 경호하고 있던 관우(關羽 ?-219)는 체포되어 허도(許道)로 끌려갔다.

그러나 관우(關羽)의 무용(武勇)과 인품에 반해 버린 조조(曹操)는 그를 포로로 취급하지 않고 손님처럼 후하게 대우하였다. 그해 겨울에 조조(曹操)는 백마성(白馬城)에서 원소의 대군과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전황은 신통치 않았다. 원소의 진영에 안량(顔良)이라는 굉장히 강한 장수가 있는데 조조(曹操)의 진영의 무장 중에는 일대일로 싸워도 그에게 이길 만한 장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조(曹操)는 수도에 있는 관우(關羽)를 불러내어 그 적장을 쳐죽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지금까지 후하게 대우해준 데 보답하기 위해 관우(關羽)는 기꺼이 싸움터로 나아가 눈깜짝할 사이에 적의 효장 안량(顔良)을 죽이고 그 후에 뛰어나온 반궁 명수인 문추(文醜)도 죽였다.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관우(關羽)가 적장 안량(顔良)을 쳐죽였을 때 조조(曹操)는 이제 관우(關羽)가 진 빚을 갚아주었지만 언젠가는 떠나 버리리라고 각오를 하였다. 그래서 특별한 은상(恩賞)을 내리고 떠나는 걸 만류할 수 있다면 좀더 붙들어 두고 싶어했다.

그 무렵 원소(袁紹)에게 가 있던 유비(劉備)가 관우(關羽)에게 밀서를 보내왔다. 뿔뿔이 흩어진 유비(劉備)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던 관우(關羽)는 일단 안심하는 동시에 부인들을 데리고 유비(劉備)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탈출할 결심을 하였다.

관우(關羽)는 조조(曹操)로부터 받은 은상(恩賞)의 물품들에 봉인을 하고 조조에게 작별의 편지를 적어 두고 원소에게 가 있는 의형 유비(劉備)를 찾아가려고 탈출하였다. 조조(曹操)의 막료들은 관우(關羽)가 달아났음을 알고 이를 추격해야 한다면 긴장한 빛을 나타냈을 때 조조(曹操)가 이를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열심히 주군에게 충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요. 추격해서는 안돼요.』

조조로서는 관우(關羽)와 같은 빼어난 무장을 언제까지나 데리고 있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진 빚을 갚은 다음에 이전의 주군에게 돌아가려는 관우(關羽)의 절도와 의리를 존중하는 품격을 보고 몹시 감동한 것이다.


촉지(蜀志) 관우전(關羽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단기천리(單騎千里)이다.

단기천리(單騎千里)란 조조(曹操)를 떠나 유비(劉備)를 찾아가는 관우(關羽)의 모습을 묘사한 말로서 말 하나를 타고 천리를 내달린다는 뜻이다.

요즘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신조어를 보면 장기간 미취업자라는 '장미족'이 있고, 31살까지 취직 못하면 길이 막힌다는 '삼일절'이 있는가 하면 30대 이후에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을 빗댄 '빨대족'까지 있다. 그런데 일단 아무 회사나 들어갔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퇴사해 백수가 된 20대를 가리키는 '이퇴백', 직장에 들어가도 연봉, 복리후생 등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취업시장으로 돌아오는 취업생을 일컫는 '돌취생'들이 걱정이다.

요즘 사회 초년생들은 처음에 들어간 기업에서 되도록 오래 근무하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현대의 비즈니스 사회에서 취직 희망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기에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 못되지만 기업이 개개인의 직원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까지의 시간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관우와 같은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급료, 장래성, 보람, 인간 관계가 정착을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시간이란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