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많은 소인배들이 남을 비방함을 일컫는 고사성어 읍견군폐(邑犬群吠)

박남량 narciso 2015. 6. 6. 13:15


많은 소인배들이 남을 비방함을 일컫는 고사성어 읍견군폐(邑犬群吠)




정치 철학이나 지조도 없으면서 소인배의 패걸이들끼리 작당하여 남을 헐뜯고 안하무인격으로 소리치는 작태가 사회에 만연한 느낌이다. 일방적인 주장을 떠들어 대거나 공연히 남을 비방하고 민생을 외면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태이다. 중국 당나라의 문장가이자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漢詩 答韋中立書(답위중립서) 사도(師道)에 대하여 논하여 위중립(韋中立)에게 답하는 편지에 나오는 일부를 읽으면서 작금 일어나고 있는 세태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屈子賦曰(굴자부왈)/邑犬群吠(읍견군폐)/吠所怪也(폐소괴야)/僕往聞庸蜀之南(복왕문용촉지남)/恒雨少日(항우소일)/日出則犬吠(일출칙견폐)/予以爲過言(여이위과언)/前六七年(전육칠년)/僕來南二年冬(복래남이년동)/幸大雪(행대설)/踰嶺(유령)/被南越中數州(피남월중수주)/數州之犬(수주지견)/皆蒼黃吠噬狂走者累日(개창황폐서광주자누일)/至無雪乃已(지무설내이)/然後始信前所聞者(연후시신전소문자)/今韓愈旣自以爲蜀之日(금한유기자이위촉지일)/而吾子又欲使吾爲越之雪(이오자우욕사오위월지설)/不以病乎(불이병호)/非獨見病(비독견병)/亦以病吾子(역이병오자)/然雪與日(연설여일)/豈有過哉(기유과재)/顧吠者犬耳(고폐자견이)/度今天下(도금천하)/不吠者幾人(불폐자기인)/而誰敢衒怪於群目(이수감현괴어군목)/以召鬧取怒乎(이소료취노호)

굴원의 부에서 이르기를/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짓는 것은/이상하게 보이는 사물에 대해서이다라고 했습니다/이전에 제가 듣기는 용과 촉 지방의 남쪽에는/항상 비가 오고 햇빛나는 날이 드물어/해가 뜨면 개들이 짓는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저는 과장된 말로 여겼었는데/육 칠년전 제가 남쪽지방으로 온 지 두 번째 해/겨울에 큰 눈이 내려/오령 너머/남월의 몇 주를 덮은 일이 있었는데/그때 여러 주의 개들은/모두 놀라 짓고 물고 하면서 며칠 동안 미쳐 돌아다니다가/눈이 그친 뒤에야 잠잠해졌습니다/그제서야 저는 전에 들었던 얘기를 믿게 되었습니다/지금 한유는 스스로를 촉 땅의 해로 생각하게 되었지만/선생은 또 나를 남월의 눈으로 만들려고 하니/이 어찌 해가 안 되겠습니까/더욱이 저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선생 또한 입게 됩니다/하지만 해와 눈에게/어찌 잘못이 있겠습니까/본시 짓는 것은 개들일 뿐이나/생각컨대 요즈음 세상에/짖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어느 누가 감히 군중들 눈을 돌게 하고 이상하게 함으로써/소란을 불러들이고 분노를 자초하려 하는가.

이 편지에 굴원(屈原 BC340 - BC278)의 읍견군폐(邑犬群吠)란 말이 나온다. 고을의 개가 많이 모여들어 짖는다는 뜻으로 많은 소인배들이 남을 비방함을 일컫는 말이다. 비방이란 남을 헐뜯어서 욕하는 것을 말한다.

시골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먼저 본 개가 짖기 시작하면 동네 개들이 따라서 짖기 시작한다. 동네 전체가 개소리로 가득하게 된다. 마을의 개들이 모여 맹목적으로 짖어대는 장면을 연상케하는 고사성어가 읍견군폐(邑犬群吠)이다.

조선조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병자호란 때 두 형인 소현세자, 훗날 효종인 봉림대군과 함께 볼모로 심양(瀋陽)에 갔다 왔으며 제자백가(諸자百家)에 정통했으며 시서화에 능한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은 자신의 시조를 통해 비방을 일삼는 사람을 질타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 보는고야/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을 고치고자.』

오늘날 자신의 허물은 모르고 남의 탓만 하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되돌아보게하는 격언 같은 시조이다. 장자(莊子)는 『비방이란 자기에게 돌아오는 화살』이라고 했다. 宋代 도원(道原)이 저술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 말을 새겨볼 일이다.

『佛頭上放糞(불두상방문) 부처님 머리 위에 똥물을 붇는다.』는 뜻이지만, 풀이하면 『무지한 소인이 군자를 괴롭혀도 군자는 괴로워하지 않고 그냥 내 버려둔다.』는 말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은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 석가모니불을 거쳐 달마(達磨)에 이르는 인도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들과 달마(達磨) 이후 법안(法眼)의 법제자들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선종의 법맥(法脈) 전승 관계를 총 30권에 정리하여 밝혀 놓은 불서(佛書)로 선종(禪宗)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이다.

성경에서도 비방에 대하여 가르침이 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7,3-5) 그리고 예수가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고 했을 때 예수님과 여자만을 남기고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고 비방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屈原)이 회영부(懷永賦)에서 말한 데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읍견군폐(邑犬群吠)이다.

읍견군폐(邑犬群吠)란 고을 개가 무리를 지어 짖어 댄다는 뜻이다. 즉 소인배들이 떼를 지어 남을 비방함을 이르는 말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당리당략, 정략에 이전투구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가 역겹다. 누가 백로이며 누가 까마귀란 말인가. 무슨 사건만 터졌다고 하면 협력하여 국민을 위하여 할려하지 않고 그것을 이슈로 삼고 이를 빌미로 민생은 외면하고 있다. 알고나 있을까. 비방한다는 것은 상대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사람들은 걸인을 보면 동정을 하지 비방을 하지 않으니까. 마을 마다 개소리가 시끄럽다.

요즘 정치꾼들을 보면 귀찮으리만큼 찾아다니고 비굴하리만큼 겸손하기까지 했던 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드름이나 피우고 차분히 국정을 논해야 하거나 민생을 걱정해야 할 현장에서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개를 길러놓으니 미친개가 되어 주인을 문다는 말처럼 안하무인에 당리당략의 패거리 문화에 볼썽사납도록 유권자들의 민의를 깡그리 무시하고 이제는 개만도 못한 읍견군폐(邑犬群吠) 무리 중 한 마리의 개가 되는 경우를 보는 것 같다. 오늘은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말을 명심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是非終日有 不聽自然無(시비종일유 불청자연무)
하루 종일 시비가 있다 해도 듣지 않으면 자연히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