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일곱 걸음을 떼는 사이에 시를 지었다는 칠보시(七步詩)

박남량 narciso 2013. 7. 3. 10:39


일곱 걸음을 떼는 사이에 시를 지었다는 칠보시(七步詩)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으로 조조의 아들인 조식(曹植)이 있다. 자는 자건(子建). 시호는 진사왕(陳思王). 중국의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시를 잘 썼다.

조조(曺操)가 산동의 창기였던 변씨의 빚을 갚아주고 기적(妓籍)에서 빼내어 첩을 삼아 3 명의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첫째가 문제(文帝)로 즉위한 조비(曺丕)이고 둘째가 조창(曺彰)이고 셋째가 조식(曺植)이다.

중국 문학사에 건안문학이라는 금자탑이 이루어진 때가 있었다.  후한말에 번성한 문학으로 훌륭한 시가 많이 지어졌는데 이 건안문학의 정치적 후원자가 조조(曺操)와 조비(曺丕)이고 그 중심에 조식(曺植)이 있어 이 세 사람을 삼조(三曺)라 일컫는다.

조조는 지도자로서 위대했던 만큼 말년에는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 하는 점이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조비(曺丕)와 조식(曺植)은 후계자 경쟁의 중심 인물이 되어 있었는데, 유능한 관리형인 장남 조비(曺丕) 쪽에 가담하느냐 아니면 천재 시인인 셋째인 조식(曺植)편에 서느냐 하는 점이 문무 고관들에게 있어 한 가문의 존속과 관련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장남인 조비(曺丕)가 황태자로 지목되어 후계자 다툼은 조식(曺植)파의 패배로 끝났다. 조비(曺丕)가 왕으로 즉위하자 이전에 후게자 지명 논란에서 조식(曺植)편에 서 있던 신하들을 철저히 숙청하였다. 그리고 형제에 대해서도 인정사정 없는 탄압을 가하였다. 동생이 아버지 조조(曺操)의 총애를 방패로 삼아 무슨 일을 할 때나 반항했던 점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한 번은 조식(曺植)을 궁정으로 불러내어 이렇게 명령하였다.

"선친이 살아 계실 때부터 너는 시재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 이 자리에서 일곱 발짝 걸어가는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 보아라. 만일 짓지 못하면 죽음을 택하라."

조식(曺植)은 창백해진 얼굴로 시재(詩題)를 내려 달라고 하니 문제(文帝)인 조비(曺丕)는 시재(詩題)를 형제(兄第)로 하라고 하였다. 조식(曺植)은 항거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한 발짝, 두 발짝 ..... 일곱 발짝에 멈춰서서는 형인 문제(文帝)를 향해 낭랑하게 읊은 시가 칠보시(七步詩)이다.

煮豆燃豆箕  콩을 볶으려고 콩껍질을 불태운다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콩은 가마솥 속에서 운다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본시도근생
相煎何太急  어찌 그토록 다급하게 볶는가
상전하태급

칠보시(七步詩)를 읊고 난 다음 조식의 볼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리고 형인 문제는 불쾌한 듯이 몹시 부끄러워하며 자리를 떴다고 전해져 온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중국 정사에는 실려 있지 않아 신빙성은 별로 없지만 칠보시(七步詩)는 동생 조식(曺植)의 간절한 형제의 정과 형인 조비(曺丕)의 비정함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칠보성시(七步成詩)이다. 칠보성시(七步成詩)는 슬기가 뛰어나 민첩하게 시를 짓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