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근원을 생각하는 지혜는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박남량 narciso 2013. 8. 7. 15:49


근원을 생각하는 지혜는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옛 성현들의 말을 들어 보기로 합시다.

장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내 것이 아니라 이것은 천지의 위형(委形)이요,  생명이 또한 내 것이 아니라 이것은 천지의 위화(委和)이다. 성명(性命)이 또한 내 것이 아니라 천지의 위순(委順)이요, 자손이 또한 내 것이 아니라 천지의 허물 벗음이다."

지당하고 옳은 말씀입니다.
내 생명이 어찌 내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내 자식들이 어찌 내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 하늘의 태양을 내가 만들지 않았듯이 내 생명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는 한 톨의 곡식을 내가 만들지 않았듯이 내 자식도, 내 아내도, 내 남편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도 주어진 것이요, 내가 살 수 있는 모든 자연 조건도, 이 땅도, 땅에서 거둘 수 있는 오곡도 주어진 것이며, 공기도,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멘트의 재료도, 모든 것이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만든 것 하나 없는, 온통 주어진 것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이 모든 것을 주었습니까?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만사가 좋고, 자식들을 보면 희망에 차고, 부부의 사랑은 즐겁고 - 이 모든 것들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닌데 - 그저 주어진 것을 마냥 가지면서, 내 정신이 여기에 다 팔려 이것을 주신 그분을 깡그리 잊어 버리고 있다면, 이것은 마치 받은 선물이 너무나 좋아서 그 선물에 도취되어, 그러한 선물을 주신 분을 잊어 버리는 큰 결례를 범하게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천지의 위형(委形)이 내 몸이요, 천지의 위화(委和)가 내 생명이다."하고 했으니 여기서 천지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절대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생명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죽음과 삶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계로(季路, 공자의 제자인 자로를 달리 이르는 말)가 귀신 섬기는 것을 묻자 공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季路問事鬼神  子曰未能事人焉  能事鬼
능히 사람을 섬기는 것도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리오.

그리고 감히 죽음이 무엇인가를 묻자 공자님이 이르시기를 이렇게 대답하셨다.
敢問死 子曰未 知其生 焉知死
태어나는 것도 알지 못하는 판국에 어찌 죽음을 알리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간의 것도 다 모르는데 어찌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생명이 태어나는 원리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비스러운 인간이 신비한 그 세계와 통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인간의 참 깊이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함경(阿含經)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구니들이여, 비유컨대 어떤 땅꾼이 큰 뱀 한 마리를 발견하고 곧 그 몸뚱이나 꼬리를 붙잡았다고 하자, 그때 그 뱀은 몸을 틀어 그 사람의 손이나 팔 또는 다른 데를 물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죽거나 혹은 죽을 만큼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그 뱀을 잡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떤 미련한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서도 그 법의 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법의 뜻을 배우면서도 그 뜻을 모르는 것이요, 뜻을 모르기 때문에 깊이 고통을 받는 것이다."

- 뜻을 모르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 - 너무나 옳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신비를 모르기 때문에 즉 생명의 출처와 그 생명의 결실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행을 느끼고 사랑의 갈증을 느끼고 고독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인간 능력의 한계점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의 도가니 속에서 안달을 하고 조그마한 불만에도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박도식 신부(2003년 선종) / 미루나무 /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