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인간의 얄궂은 운명에 대해 한탄하는 고사성어 천도시비(天道是非)

박남량 narciso 2015. 11. 23. 10:31


인간의 얄궂은 운명에 대해 한탄하는 고사성어 천도시비(天道是非)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역사가이며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 BC145-BC86)은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사마천(司馬遷)이 태사령(太史令)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무제(漢武帝)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항복하게 된다. 사마천(司馬遷)은 이릉(李陵)이 중과부적으로 어쩔 수 없이 거짓항복한 것이며 그는 훌륭한 장수라고 변호하다 한무제(韓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고 사형을 받게 된다.

당시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속전(贖錢)이라 하여 거액의 벌금을 내거나 궁형(宮刑)을 받는 방법 둘 뿐이었다. 시대적 상황은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 풍조였으나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의 완성을 위해 굴욕을 무릅쓰고 거세 당하는 형벌인 궁형(宮刑)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마천(司馬遷)의 초상화에는 수염이 없다.

사마천(司馬遷)이 궁형(宮刑)을 받기 전까지는 한무제(漢武帝)와 한나라 왕실 자체를 찬양하는 역사서를 저술하고자 하였지만 궁형(宮刑)을 받은 후로는 문제를 파악하는 관점, 인물과 사건에 대한 통찰력, 사상적인 넓이와 깊이 등이 변화하였으며 특히 한나라 왕실과 한무제(漢武帝)에 대한 비판의식, 사회의 곪아터진 부분과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마천(司馬遷)이 궁형(宮刑)을 당할 때의 울분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天道無親 常與善人  하늘은 공평무사해서 항상 착한 사람 편을 든다.'라고 하였다. 백이(伯夷), 숙제(叔齊)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처럼 인덕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였음에도 그들은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서 죽었다. 어디 그 뿐이랴! 공자(孔子)가 가장 아끼고 칭찬한 안연(顔淵)도 항상 가난해서 술지게미(糟糠)와 쌀겨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 편을 든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도척(盜跖)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으로 회를 쳐 먹는 등 악행을 일삼았으나 끝내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다. 도대체 무슨 덕을 쌓았기 때문인가? 이런 것들은 너무나 두드러진 것이지만 이같은 일상생활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또 이를테면 근자에 이르러서도 행실이 정도를 벗어나고 오로지 사람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종신토록 안일향락하고 부귀함이 여러 대에 그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갈 만한 곳을 골라서 가고 말할 만한 때를 기다려 말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으며 공명정대한 일이 아니면 분발해서 하지 않으면서 재화를 당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은 어찌된 것인가? 나는 이에 대해서 매우 의혹스러움을 느낀다. 만약에 이런 것이 이른바 천도(天道)라고 한다면 그 천도(天道)는 과연 맞는(是) 것인가, 틀린(非) 것인가?』

사마천(司馬遷)은 자신과 백이(伯夷), 숙제(叔齊), 안연(顔淵)은 모두 천도(天道)에 순응하는 사람들이고, 도척(盜跖)은 도둑으로 천도(天道)에 거스르는 자라고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을 비롯한 착실한 사람에게는 벌을 가하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곧 옳은 사람이 고난을 겪고, 그른 자가 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하늘(天道)의 뜻이 옳은(是) 것인가, 그른(非) 것인가 하고 의심해 보는 말이다.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천도시비(天道是非)이다.

천도시비(天道是非)란 천도는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라는 뜻으로 인간의 얄궂은 운명에 대해 한탄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