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이 세상에 우정만큼 멋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막역지우(幕逆之友)

박남량 narciso 2016. 3. 30. 13:56


이 세상에 우정만큼 멋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막역지우(幕逆之友)



"명성이나 좋은 술이나 사랑이나 지성보다 더욱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우정이었다. 내가 지니고 태어난 우울해 하는 버릇을 고쳐서 나의 청춘 시절을 다치지 않고 싱싱하게 새벽 노을처럼 유지시켜 준 것은 결국 우정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이 세상에 사나이 사이의 성실하고 훌륭한 우정만큼 멋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쓸쓸한 날에 청춘에의 향수와 같은 것이 나를 엄습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독일계 스위스)의 말입니다.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친구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 중에서 사랑해 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미워하는 친구가 있고, 질투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감싸주고 믿어 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란 어떤 것일까요? 친구가 슬플 때 같이 가슴 아파하고 친구가 기쁠 때 같이 웃어주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 우정은 참으로 행복하고 좋은 친구입니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피디아스라는 젊은이가 억울하게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귀향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왕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좋지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피디아스에게 작별인사를 허락하게 되면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사형수들이 부모와 작별인사를 하겠다는 핑계로 귀향하여 멀리 달아난다면 국법과 질서의 근본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왕이 고심하고 있을 때 피디아스의 친구 다몬이 보증인이 되겠다며 나섰습니다.

"폐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하겠습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다몬아! 만일 피디아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겠느냐."
"어쩔 수 없죠. 그렇다면 친구를 잘못 둔 제가 대신 교수형을 받겠습니다."
"너는 피디아스를 믿느냐?"
"폐하, 그는 제 친구입니다."

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피디아스는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돌아오려 해도 그의 부모가 보내주지 않겠지. 너는 지금 만용을 부리고 있다."
"저는 피디아스의 친구가 되길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부탁드리오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폐하!"

왕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다몬은 기쁜 마음으로 피디아스를 대신해 감옥에 갇혔습니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나 피디아스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길을 자처한 다몬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다몬은 교수대로 끌려나왔습니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자 다몬의 친척들은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피디아스를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목에 밧줄이 걸린 채로 다몬이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습니다.

"나의 친구 피디아스를 욕하지 마라. 그대들이 내 친구를 어찌 알겠는가."

죽음이 목전에 닥쳤는데도 불구하고 다몬의연한 모습에 소란스럽던 장내는 금새 조용해졌습니다. 집행관이 고개를 돌려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은 주먹을 쥐었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라는 신호였습니다.

그 때 멀리서 누군가 말을 재촉하여 달려오며 고함쳤습니다. 피디아스였습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는 길에 배가 풍랑을 만나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 바람에 이제야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몬을 풀어주십시오. 사형수는 접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다몬! 나의 진정한 친구여! 저 세상에 가서도 자네를 잊지 않겠네."

"피디아스! 자네가 먼저 가는 것 뿐일세.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우리는 틀림없이 친구가 될 거야."

두 사람의 우정을 비웃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다몬과 피디아스는 영원한 작별을 눈앞에 두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오직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습니다.

밧줄이 다몬의 목에서 피디아스의 목으로 바뀌어 걸린 뒤 교수형이 집행되려는 찰나, 왕은 사형집행을 멈추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와 두 사람 앞에 섰습니다. 왕은 측근이 겨우 알아들을 만한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속삭였습니다.

"부럽구나. 내 모든 것을 다 걸더라도 이런 두 사람 사이의 그 우정을 내가 갖고 싶구나."

왕은 두 사람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왕의 권위로 결정하노라. 저 두 사람을 모두 방면토록 하라. 비록 죄를 지었지만 저 두 사람의 우정이 자랑스럽도다."

사형장에 모여있던 대신들과 백성들은 그제야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두 사람의 방면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 다. 다몬과 피디아스는 진정한 우정 막역지우(幕逆之友)였습니다.

역사 속 영웅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인생 전략,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을 담은 제임스 M. 볼드윈의 《100년 후에도 읽힐 100가지 유명한 이야기》(원제:Fifty famous stories retold/Baldwin James M.)에 실린 <다몬과 피디아스의 우정>이란 어린이용 교육 동화입니다. 웹상에서 왕을 광해군, 다몬을 이대로, 피디아스를 나성룡으로 바꾸어 소개하고 있는 것 같은 <참 아름다운 우정>이라는 이름의 글이 있었습니다. 

우정이란 껍질 뒤에 거리감과 무관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친구란 어떤 것일까요?
자기 이외의 또 하나의 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가 없어도 자기를 존재하게 해 주는 이것이 친구가 아닐까요. 우리는 자신의 잣대와 기준으로 고정시키는 우를 범하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친구를 찾아 봅시다.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친구와 동참하는 삶을 사랑하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