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의 지식과 전통을 지킨 이스라엘의 위대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
율법학교를 졸업한 유태 랍비들은 스스로 평생학생이라는 자각을 품고 살았다. 그리고 랍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태인 공동체는 학습공동체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나라 없이도 언어와 전통과 정체성을 2천년 동안이나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태인에게교육은 곧 신앙이다. 이것이 패망한 유태인들의 생존에 구심점이 된다. 유태민족이 사상 최대의 정신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커다란 활동을 한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가 있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서기 66년부터 70년까지 1차 유태-로마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다. 유태의 파멸을 초래한 이 끔찍한 전쟁은 로마인이 유태의 사원을 파괴하고 유태인을 절멸시키려 했을 때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바리사이파였다. 그는 민족의 정치적 독립보다는 유태교 보존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항복하자고 주장했다. 그래서 무쟁투쟁에서 실패한 강경파인 열성당은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의 행동을 늘 감시하고 있었다.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로마군에 포위된 예루살렘은 학살당하고 유태인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을 예견하여 유태 민족이 영구히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로마의 장군과 협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유태인들은 모두 예루살렘 성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속임수를 써 탈출하였다. 흑사병에 걸린 환자로 위장했던 것이다. 그는 대승정(大僧正)이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의 병상으로 위문을 왔다. 얼마 뒤 그가 위독하다는 소문이 퍼지고 마침내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성 안에 퍼졌다. 제자들은 그를 관 속에 넣고 예루살렘의 성 안에는 묘지가 없었으므로 성 밖에 매장할 허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강경파 열성당인 경비병들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의 죽음을 의심하여 칼로 시체를 찔러 보겠다고 말했다. 당시 유태인들의 전통에는 시체를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시체를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관 위에서 칼로 찌르려 했던 것이다. 제자들은 돌아가신 분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필사적으로 항변하여 무사히 강경파 열성당의 경비를 통과하여 로마군의 전선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로마군의 전선에 이르자 로마병 역시 칼로 관을 찔러 시체를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 만일 로마의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칼로 관을 찌르겠는가? 우리들은 전혀 무장도 안 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여 드디어 전선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관을 열고 나와서 사령관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는 로마 사령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나는 당신에게 로마 황제에 대한 것과 똑같은 경의를 표합니다.』하고 말하였다. 황제라는 말을 들은 사령관은 황제를 모욕한다고 화를 냈다. 그러자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내 말을 믿으시오. 당신은 틀림없이 다음번의 로마 황제가 될 것입니다.』 라고 단언하였다.
대담한 한 유태인의 말뜻을 알아차린 사령관은 『당신이 위험을 무릎쓰고 나를 찾아와서 하려는 말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집에서라도 좋습니다. 열 명 정도의 랍비가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하나 만들어 주시고 그것만큼은 파괴하지 말아 주십시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조만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점령되어 파괴될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살이 일어날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만 있다면 유태의 전통은 남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령관은 『좋소, 생각해 보지요.』 라고 말했다. 곧 로마의 황제가 죽고 이 사령관이 황제가 되었다. 황제는 로마병들에게 『작은 학교 하나만은 남겨두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작은 학교에 남았던 학자들이 유태의 지식과 전통을 지켰다. 전쟁이 끝난 뒤의 유태인의 생활 양식도 또한 그 학교가 지켜 주었던 것이다.
『착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다.』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와의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은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의 말이다.
교육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품게 하여 자유, 평등, 생명을 위해 소리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교육이 돈이나 권력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는데 이스라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의 이야기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글과 전통과 정체성을 후세에게 제대로 전해주기 위하여 우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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