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 메추라기(鶉)

박남량 narciso 2018. 5. 25. 16:58

우리 미술관 옛그림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60)  메추라기(鶉)


중인의 아들로 태어난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60)은 주어진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최북(崔北)은 다양한 호를 가졌습니다. 양반들이 자신을 '어이', '거기'라고 부르는 게 거슬렸는지 아예 호를 '거기재'라고 짓는가 하면, 붓 하나로 먹고산다 해서 호생관(毫生館)이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인 북(北)자를 파자(破字)해 자를 칠칠(七七)이라 짓기도 했습니다. 그는 산수와 메추라기를 특히 잘 그려서 '최산수' 또는 메추라기 순(鶉)을 써서 최순(崔鶉)이라는 별칭도 가졌습니다.

최북(崔北 1712-1760)  메추라기(鶉) 그림은 메추라기 두 마리가 조 이삭 밑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한 마리는 촘촘한 이삭을 향해 고개를 쳐들은 모습이고, 한 마리는 땅에 떨어진 낱알을 부리로 쪼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처럼 먹을거리 풍부한 곳을 찾아다닌 탓인지 한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메추라기들입니다. 조(粟)는 기장처럼 알곡이 적습니다. 하도 적어서 조(粟)와 기장(粱)은 '소득 없는 짓'에 비유되곤 합니다.

최북(崔北)은 메추라기를 유독 잘 그렸습니다. 짧은 날개 깃털마저 왜소한 느낌보다는 몸을 단정하고 단아하게 감싸는 외투쯤으로 능청스럽게 그려낼 줄 알았습니다. 메추라기는 약간 추레한 털빛이며 훤칠하게 멀리 날지 못하는 날짐승으로서의 특징이며 아름답지 않은 울음소리 등으로 그리 즐겨 그려지는 영모(翎毛)는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