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박남량 narciso 2017. 5. 22. 14:26


우리 미술관 옛그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글씨 뿐 아니라 난을 치는 것도 매우 수준이 높았습니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그의 난초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난초(蘭草)와 참선(參禪)의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뜻이 담긴 제목입니다. 난(蘭)을 그리는 것이 산중의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參禪)을 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빈 공간에는 글씨만 있고 도장도 수없이 찍어 놓아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때 서권기(書券氣) 혹은 문자향(文字香)이니 하는 선비의 고고한 정신 세계가 아직 보이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아니한다.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券氣)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서권기(書券氣) 혹은 문자향(文字香)은 학식 높은 선비의 그림에 있어서 그림이 정확한 형상을 묘사하거나 진한 채색을 쓰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품격을 보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세한도(歲寒圖)와 더불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대표작입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과천에 살면서 인생 말년에 그의 시동 달준이를 위해 그려준 작품입니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추상적으로 생긴 난(蘭)을 중심에 그리고 나머지 빈 공간에 여러 차례 제발(題跋)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도장은 추사(秋史), 고연재(古硯齋), 낙문천하사(樂文天下士), 김정희인(金正喜印) 등의 인장은 직접 찍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머지 도장은 모두 이 작품을 소장한 사람들이 후대에 찍은 것입니다. 그리고 꽃옆에 찍힌 묵장(墨莊)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꽃심 옆에 붉은색 도장을 찍게 되면 그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림에 담긴 제발(題跋)을 살펴봅니다.

不作蘭花二十年(부작난화이십년)
偶然寫出性中天(우연사출성중천)
閉門覓覓尋尋處(폐문멱멱심심처)
此是維摩不二禪(차시유마불이선)

난초 그림 안 그린지 20년 만에
우연히 본성의 참모습을 그렸네
문 닫고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일세

若有人强要爲口實(약유인강요위구실) 又當以毘耶無言謝之(우당이비나무언사지) 曼香(만향)

만약 어떤 사람이 억지로 요구하며 구실을 삼는다면, 또한 마땅히 유마거사(維摩居士)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만향(曼香) 쓰다.

以草隸奇字法爲之(이초예기자법위지) 世人那得知(세인나득지)
那得好之也
(나득효지야)
竟又齋(구경우재)


초서(草書)와 예서(隸書), 기자(奇字)의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쓰다.

示爲達俊放筆(시위달준방필) 只可有一(지가유일) 不可有二(불가유이) 仙客老人(선객노인)

애초 달준(達俊)이를 위해서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있을 수 있고,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 선객노인(仙客老人) 쓰다.

吳小山見而豪奪(오소산견이호탈) 可笑(가소)

소산(小山) 오규일(吳圭一)이 보고 억지로 빼앗으니 우습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이처럼 여러 차례 제발(題跋)을 추가한 것은 기본적으로 쓰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써나갔던 제발(題跋)과 서체(書體)가 차지하는 조형적 의미가 중요하였으므로 추사(秋史)가 이를 섬세하게 고려한 듯 서체의 크고 작음과 순행과 역행으로 쓰고 행법(行法)과 농담(濃淡)까지 맞추어가며 추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