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신윤복(申潤福)의 <삼추가연(三秋佳緣)>

박남량 narciso 2017. 5. 8. 13:19

우리 미술관 옛그림

신윤복(申潤福 1758- ? )  <삼추가연(三秋佳緣)>



혜원(惠園) 신윤복(申潤福 1758- ? )의 삼추가연(三秋佳緣)입니다. 삼추가연(三秋佳緣)이란 깊어가는 가을에 세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을 맺는다는 뜻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림에 사랑의 기쁨이나 인연의 멋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성을 사고 파는 듯한 우울함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에는 왼쪽에 국화꽃이 피어 있고, 젊은 사내와 댕기머리를 늘어뜨린 어린 소녀 그리고 노구(老軀)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전한문소설 절화기담(折花奇談)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입니다. 절화기담(折花奇談)은  애정소설입니다. 남주인공은 일대의 재자(才子) 이생(李生)이며, 여주인공은 이미 머리를 얹은 방씨(方氏)네 계집종으로 열일곱 살 난 절세의 미인 순매(舜梅)입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애정 놀이를 주선해 주는 역할을 하는 노구(老軀), 순덕(舜德), 간난(干鸞)이를 끼워 넣어 재치 있게 엮어 나가는 소설입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노구(老軀)는 단정하게 앉아 있지만 속물스러워 보이는 표정에 간교하고 불길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림 속의 사내는 아직 앳된 기운조차 느껴지는 젊은 나이고, 여자는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옆모습만 보아도 젊은 처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젊은 사내는 저고리를 벗은 채 대님을 만지고 있는데 만남을 위한 시작일까요? 아니면 만남을 끝낸 후일까요? 젊은 사내의 머리카락을 살펴보면 왼쪽의 뒷머리와 오른쪽에 보이는 귀밑머리가 온통 상투 밖으로 풀어헤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속치마를 드러내고 거의 퍼질러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초야권(初夜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머리 얹어준다는 말입니다. 기생(妓生)의 초야권(初夜權)을 사서 땋은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릴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동기(童妓)의 초야권(初夜權)을 사는 사람은 이부자리와 의복과 당일의 연회비를 부담합니다. 젊은 사내는 초야권(初夜權)을 산 것일까요. 이 그림은 조선 화단에 유일한 초야권과 관련된 그림이라고 합니다.


화제(畵題)는 당(唐) 나라 시인인 원진(元稹 779-831)의 국화(菊花)라는 시(詩)입니다.


秋叢繞舍似陶家(추총요사사도가)

遍繞籬邊日漸斜(평요리변일점사)

不是花中偏愛菊(물시화중편애국)

此花開盡更無花(차화개진경무화)  


국화꽃 쌓인(秋叢) 집은 도연명(陶家)이 사는가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기우네
꽃 중에 국화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꽃이 다 피고나면 더는 꽃이 없다네

기생(妓生)의 초야권(初夜權)은 기생(妓生)의 삶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생(妓生)의 삶에 '화초(花草)를 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기생(妓生)=성(性)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12-13세 된 동기(童妓)가 댕기머리를 한 채 주연이 벌어진 연회장에 나아가 앉아 있습니다. 한창 흥이 무르익을 즈음 관리 하나가 동기(童妓)에게 다가와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면 동기(童妓)는 기다렸다는 듯이 댕기를 풀어 관리의 주머니에 슬그머니 집어넣습니다. 이를 두고 '화초를 얹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동기(童妓)는 관리가 화초를 얹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관리에게 춤과 노래를 제공합니다. 그러면 관리는 연회가 끝난 다음 날 금비녀나 쌍으로 된 금가락지를 살 수 있을 정도의 화대를 동기(童妓)에게 보냅니다."(이매창평전/김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