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술관 옛그림
정선(鄭歚 1676 - 1759) <송림한선(松林寒蟬)>
송림한선(松林寒蟬) 곧 소나무 숲의 가을 매미라는 뜻입니다. 현대는 밤낮 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에게 매미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입니다. 밤이 되어도 대낮처럼 환한 불빛 때문에 밤을 낮이라 착각한 매미는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 선비들은 매미를 오덕(五德)을 갖춘 군자로 생각하며 그 미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육운(陸雲 262-303)이 매미를 일컬어 문(文), 청(靑), 염(廉), 검(儉), 신(信) 오덕(五德)을 지닌 곤충이라 칭송하였습니다. 오덕(五德)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도리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 그린 풍경화가 아니라 자연에 빗대어 삶의 철학을 담은 그림인 것입니다. 옛 선비들은 곤충 한 마리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 뜻을 새기는 숭고하고 겸허한 삶의 자세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중국 송나라 구양수(歐陽脩 1007 -1072)의 매미소리에 붙이는 글(鳴蟬賦)가 유명합니다. 중국 송나라 인종 때의 일입니다. 백성들이 하늘을 원망할 정도로 큰 비가 내렸습니다. 황제가 구양수(歐陽脩)에게 제사를 올려 하늘을 달래도록 명하였습니다. 구양수(歐陽脩)는 생각을 맑게 하고 마음을 깨끗이하여 사당에서 엄숙하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자 비가 멎고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햇볕이 쏟아졌습니다. 구양수(歐陽脩)는 풀밭에 앉았습니다. 무심한 눈길로 뜰을 바라보니 고목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나무 끝에서 울어대는 매미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풀밭에 앉아 매미 울음소리를 듣다 느낀 바가 있어 명선부(鳴蟬賦)를 지었습니다.
매미 소리에 붙이는 글(鳴蟬賦) / 구양수(歐陽脩 1007-1072)
여기에 한 물건 있어 나무 끝에서 우는데
맑은 바람 끌어 들여 긴 휘파람 불기도 하고
가는 가지 끌어안고 긴 한숨 짓기도 하네
맴맴 우는 소리는 피리 소리와 다르고
찢어지는 소리로 부르다 다시 흐느끼고
처량하게 끊어질 듯하다 다시 이어지네
외로운 운을 토하고 있어 음률 가늠하기 힘들지만
오음의 자연스러움 품고 있네
나는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하거니
그 이름이 매미라네.
鳴蟬賦 -歐陽脩(1007-1072)
爰有一物鳴于樹顚 / 引淸風以長嘯 / 抱纖柯而永歎 / ??非管 /裂方號而復咽 / 凄欲斷而還連 / 吐孤韻以難律 / 含五音之自然 / 吾不知其何物 / 其名曰蟬
구양수(歐陽脩)의 명선부(鳴蟬賦)는 매미 한 마리의 울음 소리를 통해 심원한 예술론을 확장해 나가는 시인의 집중력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명선부(鳴蟬賦)에 취한 화가들은 붓을 들어 매미를 그렸습니다. 정선(鄭? 1676 - 1759)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송림한선(松林寒蟬)은 명선부(鳴蟬賦)를 잘 살린 수작입니다.
송림한선(松林寒蟬)은 매우 단순하게 그려졌습니다. 왼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가로지른 소나무 가지에 매미가 붙어 있습니다. 매미는 하늘 쪽을 향해 붙어 있는데 나뭇가지는 땅쪽으로 뻗어 있어 긴장감을 주고 있습니다. 나무의 몸통을 넓게 그리고 넓은 몸통에 작은 매미가 붙어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식인데 비해 이 그림은 소나무 가지의 연장선처럼 하늘을 보고 있는 매미를 그렸습니다. 위의 나뭇가지와 아래의 나뭇가지를 매미가 이어주는 것 같습니다. 매미가 날아가 버리면 두 개의 나뭇가지는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텅 빈 공간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비가 그친 뒤 청아한 기운을 전해주기 위함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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