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술관 옛그림
이쾌대(李快大 1913-1965)의 <상황>
이쾌대(李快大 1913-1965)는 암울한 시대를 딛고 예술혼을 꽃피운 화가로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식민지 시대에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주제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확립하였으며, 해방직후 좌익과 우익이 대립하며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졌을 때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대작을 쏟아낸 월북화가(越北畵家)입니다.
이쾌대(李快大)는 이념의 희생양이라고 합니다. 6·25 때 모친의 병환 때문에 피란을 가지 못한 채 서울에 있다가 인민군에 붙잡혀 김일성 초상을 그려야 했습니다. 좌익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것 때문에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포로 교환 때 어쩔 수 없이 북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림은 제목이 <상황>이라는 그림으로 1938년 2월로 서명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전통과 현대의 갈등, 개인과 시대와의 불화, 대충 이런 걸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림을 살펴보세요. 이 그림은 <상황>이란 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구체적인 상황을 그린 것임에는 분명한데 정말 상황이 묘합니다.
무엇을 그렸으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림의 맨 앞에 전통 혼례 복장으로 족두리를 쓴 여인이 무술을 하는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발치에는 깨진 접시가 나뒹굴고, 왼쪽에는 남바위를 쓰고 표정 얄궂은 할멈이 품에 이것저것 잔뜩 안고 있고, 뒤쪽에는 중년 남성, 무표정한 중년 여성,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앉아 있는 반라의 여인.
할머니가 정신줄 놓은 딸을 위해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다는 이야기로 굿판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색동옷을 입은 무당의 버선발에 차여 그릇이 깨지고 뒤쪽의 반라의 여인은 굿판이 있게 한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원삼에 족두리가 무당에 어울리지 않으니 이 해석도 아닌 것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은 혼례를 치를 신부의 차림을 하고 춤이라고는 보기 힘든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희 같기도 하고 한 여인의 버선 발길에 차여 엎질러진 사발과 깨어진 채 흩어진 기물들은 그림에 그려진 인물들의 알 수 없는 표정들과 함께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평자는 전통과 현대의 갈등, 나라 잃은 국민의 비애, 시대의 아픔과 불안감을 상징한다는 설명을 내놓기는 했으나 당장은 풀기 힘든 묘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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