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작자 미상의 민화 <바리공주>

박남량 narciso 2017. 12. 1. 13:48


우리 미술관 옛그림


작자미상 바리공주 민화 조선시대, 영월민화박물관 소장



죽은 자를 천도하는 의례인 진오기굿, 안안팎굿, 오구굿 등을 구연할 때 빠지지 않는 바리데기 서사무가(敍事巫歌)는 흔한 공주이야기입니다. 죽은 자를 위한 자리에 초대되는 공주 바리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 가장 고통스러운 그곳에서 사람을 돕는 여신입니다. 바리공주 이야기는 불라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불라국 임금 오구대왕은 어여쁜 길대부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나라의 대사를 앞두고 점쟁이에게 점을 치게 하자 금년에 혼인하면 일곱 공주를 얻고 다음 해에 혼인하면 세세자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구대왕은 복자(卜者) 즉 점쟁이의 말을 무시하고 혼례를 치렀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부부의 삶은 행복으로 충만했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예쁜 공주였습니다. 첫째 공주에게는 다리당씨라는 이름과 청대공주라는 별호도 내려주었습니다. 길대부인은 계속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번번이 딸만 낳았습니다. 여섯 공주를 낳았습니다.

길대부인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대명전 대들보에 청룡과 황룡이 엉켜 있고, 오른손에 보라매, 왼손에 백마를 받고 있으며 왼쪽 무릎에는 검은 거북이 앉아 있는데 양 어깨에 해와 달이 돋아 있는 신기한 꿈이었습니다. 오구대왕은 꿈이야기를 듣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어 낳은 아이는 또 딸이었습니다.

어미인 길대부인도 아비인 오구대왕도 기쁨이 아닌 서러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대가 컷던 만큼 실망도 큰 오구대왕은 막내딸을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참아왔던 분노와 원망의 표현이었습니다. 길대부인은 대왕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이름이라도 지어 보내자고 호소합니다.

" 버려도 버릴 것이요, 던져도 던질 것이니 '바리'라고 지어라." 이렇게 해서 일곱 번째 공주는 버려진 아이 '바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옥함에 담겨져 바다로 떠내려갔지만 가라앉지 않고 비리공덕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곳에 가 닿았습니다. 하늘이 점지한 아이 '바리'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자식이 없는 노부부의 손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아니를 버린 죄로 오구대왕 내외는 같은 날 병이 들었습니다. 치유할 수 없는 병이 든 후에야 일곱 공주를 낳을 것이라고 점괘를 내놓았던 복자(卜者)를 찾았습니다. 점쟁이는 대왕 부부가 죽을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면서 이미 버린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실망한 오구대왕이 잠이 들어 꿈속에서 한 동자를 만납니다. 동자는 병이 나으려면 동해 용왕과 서해 용왕의 용궁에서 약을 얻어먹거나 서천서역국에 있는 무장승의 약수를 얻어 마셔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바리공주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오구 대왕은 신하들에게 서천서역국의 약수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하지만 어려운 부탁 앞에서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애지중지 곱게 키운 여섯 공주도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간곡한 청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구대왕은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든 육신을 가진 나약한 한 인간임을 깨달았습니다. 한 신하의 도움으로 막내딸 바리와 재회하게 된 대왕은 뼈아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리공주야, 울음을 그쳐라. 네가 미워 버렸겠느냐? 역정 끝에 버린 것이다. 봄 삼월은 어찌 살고, 결울 삼삭은 어찌 살았으며, 배고파서 어찌 살았느냐?'

바리공주는 울음을 그치며 대답했습니다. 바리는 신산한 삶의 흔적을 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추위도 어렵고 더위도 어렵고 배고픔도 어렵더이다."

오구대왕의 처지를 안 바리공주는 서천서역국까지 가는 먼 길을 떠나겠다고 자청합니다. 버려진 아픔, 거절당한 고통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준 것이 없다며 미안해하는 부모에게 배 속에서 길러준 열 달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먼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겨우 재회한 부모와 다시 이별해야 하는 그녀를 까막까치가 인도했습니다.

서천 서역국까지 가는 길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험난했습니다. 여러 지옥이 펼쳐지고 지옥에서는 죄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바리공주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극락에 가도록 빌어주었습니다.

저승에 도착하니 무장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장승은 지옥을 넘고 모든 것이 가라앉은 삼천리 바다를 건너온 그녀를 칭찬해주기는커녕 길 값으로 나무하기 3년, 삼값으로 불때가 3년, 물값으로 물 긷기 3년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9년을 채운 소녀는 이제 소녀가 아니라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무장승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달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무장승의 요구대로 그와 혼인하여 일곱 아들을 낳았습니다. 바리공주는 약수 한 병을 얻기 위해 긴 세월을 견뎠습니다. 때가 되어 그녀가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돌아가겠다며 약수를 요구하자 무장승은 무심히 말했습니다.

"그대가 길어다 쓰는 물이 약수이니 가져가고, 베던 풀은 개안초(開眼草)이니 가져가시오. 뒷동산 후원의 꽃은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 꽃이니 가져가시오. 삼색 꽃은 눈에 넣고, 개안초는 몸에 품고, 약수는 입에 넣으시오."

보물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부모를 떠날 때는 혼자였지만 돌아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무장승과 일곱 아들이 있었습니다. 지상에 도착하니 부모님의 상여가 나가고 있었습니다. 바리공주는 무장승이 일러준 대로 삼색 꽃을 뿌리고 약수를 입에 넣어 부모를 살려냈습니다. 대왕 부부는 한숨 깊은 잠을 잔 것처럼 다시 환하게 깨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