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연담(蓮潭) 김명국(金命國)의 달마도(達磨圖)

박남량 narciso 2018. 11. 12. 15:51

우리 미술관 옛그림


연담(蓮潭) 김명국(金命國 생몰년도 미상) <달마도(達磨圖)>


연담(蓮潭) 김명국(金命國)의 달마도(達磨圖)입니다. 현존 달마도(達磨圖)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입니다. 달마(達磨)대사가 머릿수건을 덮어쓰고 근심어린 눈초리와 착잡함에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이 고통스런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달마도(達磨圖)입니다.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달마(達磨)대사를 그려낸 이 작품은 삶의 고통이 큰 깨달음이라는 역설을 어떤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힘찬 옷선의 붓질로 나타냈습니다.

17세기 대표적인 화원으로 1636년과 1643년에 조선통신사를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온 적이 있고, 1651년 헌종의 혼례 때 설탄(雪灘) 한시각(韓時覺 1621-?)과 함께 가례도감의궤도(嘉禮都監儀軌圖)의 제작에 참여했다는 기록만이 전해지고 있는 연담(蓮潭) 김명국(金命國)의 생몰연대는 미상입니다. 다만 그의 이름은 본래 明國(명국)이었으나 나중에 命國(명국)으로 바꾸었으며 취옹(醉翁)이라는 별칭도 즐겨 사용했습니다.



달마(達磨 470-536)대사는 남인도의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중국 남북조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입니다. 달마(達磨)대사를 주제로 한 그림이 언제부터 그려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고려후기 선종(禪宗)의 유행으로 많은 달마도(達磨圖)가 그려졌다는 기록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의 작품들이 몇 점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래 옛사람들에 의해 그려졌던 달마도(達磨圖)는 길상이나 벽사적인 소망하고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달마(達磨)대사가 신격화한 것은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부덕과 오만을 질타하다 죽임을 당한 달마(達磨)대사가 관속에서 부활해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서천행(西天行) 이야기와 서천행(西天行)을 하는 달마(達磨)대사를 군사들이 쫓아가자 갈대 잎을 꺾어 타고 강물을 건넜다는 그의 삶에 얽힌 설화와 관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