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수월헌(水月軒) 임희지(林熙之)의 난죽석도(蘭竹石圖)

박남량 narciso 2018. 3. 16. 13:34


우리 미술관 옛그림


수월헌(水月軒) 임희지(林熙之 1765-1820)  난죽석도(蘭竹石圖)


수월헌(水月軒) 임희지(林熙之 1765-1820)의 난죽석도(蘭竹石圖)입니다. 그림에는 화가의 내면세계와 인생의 흔적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화가의 정서와 생각을 담아내는 것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림을 볼 때 화가의 생각과 일생을 알면 그림에 담긴 의미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임희지(林熙之)의 난초는 난엽(蘭葉)의 선이 부드러우면서도 활달합니다. 난죽(蘭竹)이 가지고 있는 본질의 추구보다는 표현 자체에 탐닉하는 경향을 보이는 그림입니다.

난(蘭)은 군자의 꽃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나 미인의 향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임희지(林熙之, 1765~?)의 난(蘭) 그림은 마치 미인을 염두에 두고 그린 듯 빼어난 모습이 요염하기까지 합니다.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나온 괴석과 괴석 뒤로 뻗어 나온 대나무, 그리고 괴석 아래 활달하고 힘찬 난(蘭)이 자신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폭풍을 만나자 "죽는 것은 늘 있는 일이나 이런 장관은 쉽게 볼 수 없으니 어찌 춤을 추지 않겠느냐"며 뱃전에서 호방하게 춤을 추던 수월헌(水月軒) 임희지(林熙之)의 난죽석도(蘭竹石圖)는 속도 있는 필치로 대담한 농담(濃淡)의 변화와 능란한 파발묵(破潑墨)을 구사하며 바위와 함께 어우러진 난과 대나무의 기세를 거침없이 묘사해 내었습니다. 농염(濃艶}한 선과 활달한 필치는 난초뿐 아니라 대나무와 바위에도 고루 스미듯 합니다. 바위에 의존해 호기롭게 피어난 난과 대나무 그리고 바위의 세 경물(景物)이 어우러짐이 이채롭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세 가지의 경물(景物)을 그린 뜻을 적었습니다.
元章之石(원장지석) 子猷之竹(자유지죽) 左史之蘭(좌사지난) 日朝贈君(일조증군) 何以報之(하이보지)
원장(元章 미불)의 돌, 자유(子猷 왕휘지)의 대나무, 좌사(左史 굴원)의 난을 한꺼번에 그대에게 주노니 무엇으로 보답할 터인가.”라는 내용의 화제(畵題)는 분방한 필치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쳐난다.

“원장(元章)은 북송 대 문인 화가인 미불(米芾)의 자(字)를 가리킵니다. 그는 돌을 좋아하여 괴석을 향해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자유(子猷)는 동진(東晉)의 서예가 왕휘지(王徽之)로서 하룻밤도 대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묵을 수 없다며 처소에 대를 옮겨 심게 했다는 인물입니다. 좌사(左史)는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을 일컫습니다. 굴원(屈原)은 몇 이랑의 밭에 혜란을 심은 걸 노래할 정도로 난초를 매우 아꼈습니다.

이처럼 아낌을 받는 난(蘭), 죽(竹), 석(石)을 한 폭에 그려 모두 주는데 그대는 무엇을 주겠느냐 물으니, 그 화제(畵題)는 수월도인(水月道人) 임희지(林熙之)다운 호기로움을 보여준다. 그리 넉넉하지 않게 살았던 임희지(林熙之)였으나 이처럼 그림으로 자신의 풍요를 건네면서도 이를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