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박남량 narciso 2017. 2. 10. 10:09


우리 미술관 옛그림

김홍도(金弘道 1745-1806 )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가 57세인 1801년에 그린 고사인물화(故史人物圖)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입니다. 삼공불환(三公不換)이란 말은 평생을 포의(布衣)로 지냈던 남송(南宋)의 시인 대복고(戴復古 1167- ?)의 조대(釣臺 낚시터)라는 시(詩)의 한 구절을 그림의 제목으로 그린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삼공(三公)의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釣臺(조대) - 대복고(戴復古)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우리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
平生誤識劉文叔(평생오식유문숙)
惹起虛名滿世間(야기허명만세간)

세상 일에 무심한데 오직 하나 낚시대라 / 삼공 벼슬 준다 해도 이 강산과 안 바꾸네 / 평생에 유문숙을 잘못 안 까닭에 / 헛된 명성만 세상 가득 드러났네.

삼공(三公)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세 정승을 의미하며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낚시대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큰 집도 필요 없고 낚시대 드리울 수 있는 강산만 있으면 된다는 시(詩)입니다. 이 그림은 전원의 생활을 누리고 있는 그림으로 조선의 풍속화, 진경산수화, 산수인물화가 결합되어 그려진 김홍도(金弘道)의 말년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그림입니다.

웅장한 산과 바위를 등지고 대각선으로 배치된 기왓집 안의 풍경과 집 밖의 풍경입니다.그리고 산세는 속세를 떠난 선비의 기상을 표출하는듯 합니다. 집안에는 다양한 사대부가의 생활 정경이 서정적인 분위기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안채와 바깥채의 일상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게 그렸습니다. 닭과 강아지가 한가롭게 놀고 있는 안채는 여인의 공간임을 알 수 있도록 여인네가 집안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남성의 공간인 바깥채에는 책을 읽고 거문고를 연주하고  자식을 가르치고 벗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 집안에는 학, 말, 사슴 등을 그려 넣었으며 시중드는 여인과 말먹이를 주는 하인 등의 모습도 그렸습니다. 담 너머 집밖에는 넓은 논밭에 농부의 손길이 바쁘고 왼쪽에 비스듬히 솟아 있는 나지막한 동산 밑에는 넷채의 초가가 보입니다. 그 위에 돛대만 삐죽하게 보이는 강가의 풍경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가로우면서도 시정이 깃든 전원의 생활모습입니다.

화면 왼쪽 위에는 다음과 같이 중장통의 「낙지론」 전문과 홍의영(洪儀泳)이 쓴 관지(款識)가 적혀 있습니다. 이글을 통해 1801년 12월 순조가 수두를 앓다 쾌유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辛酉冬十二月 玉候水痘翌瘳 八域欣忭 留後韓公作稧屛 分于僚屬 盖識曠前之慶也 韓公及余得神禹治水圖 摠制得花卉翎毛 州判願爲三公不換圖 各取其好也 圖旣成遂題仲長氏樂志論 取其語之副於圖 且期成其所好 無負仲長之論檀園之畵也 艮齋題于檀園三公不換圖

신유년 겨울 12월에 임금의 병환인 수두가 나아서 온 나라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유후 한공이 계병을 만들어 휘하의 벼슬아치에게 나누어 주니 대개 전에 없던 경사를 기념한 것이다. 한공과 나는 「신우치수도(神禹治水圖)」를 얻었고, 총제관은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를 얻었으며, 주판은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로 하기를 원하니 각자 그 좋아하는 것을 얻었다. 그림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드디어 중장씨(仲長氏)가 지은 「낙지론」을 화제로 썼는데, 그 말이 그림에 부합되는 것을 골랐다. 장차 그 좋아하는 바가 이루어지고 중장씨가 논한 내용과 단원의 그림에 나타난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간재 홍의영이 단원이 그린 「삼공불환도」에 제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