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 김득신의 대장간

박남량 narciso 2016. 6. 3. 10:39


우리 미술관 옛그림


김득신(金得臣 1754-1822) <대장간>


당시 조선사회의 밑바닥을 걸어야만 했던 대장장이들의 즐거움과 일하는 아름다움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는 사실이 용기가 필요했으리라고 짐작됩니다. 풍속화라고 하면 김홍도(金弘道 1745-1806)를 떠올립니다.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대장간> 그림이 김홍도(金弘道)의 것을 모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단순한 모방을 뛰어넘어 생동감과 힘이 느껴집니다.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김득신(金得臣)의 그림은 김홍도(金弘道)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득신(金得臣)의 작은 아버지 김응환이 김홍도(金弘道)와 절친한 사이로 정조 임금의 명을 받아 금강산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려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인연으로 선배화가이자 작은 아버지의 친구인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에서 보이던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낫 갈던 사내는 대장장이가 아닌 까닭에 김득신(金得臣)은 과감히 빼 버렸습니다. 대신 대장장이들이 젊어지고 힘있는 모습입니다. 풀무질을 하고 있는 소년의 표정이 매우 밝고, 웃통을 벗어 제치고 메를 휘둘러 치는 총각 일꾼과 중년 일꾼 그리고 집게 잡은 사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동작과 감정이 모두 질서를 잡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일꾼들이 쓰고 있는 머릿수건들이 모두 불꽃처럼 하늘로 치솟으며 남실거리는 맵시라든지 불 튀기는 화덕 앞에서도 오히려 탯가락이 잡힌 외씨버선의 맵시라든지 모두가 신명나는 서민들의 멋과 가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홍도(金弘道)는 대장간을 사실 그대로 그렸지만 김득신(金得臣)은 생략할 건 생략하고 그 대신 대장간에 걸맞게 생동감 있고 힘있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김홍도(金弘道)의 <대장간>에는 배경이 생략되어 있으나 김득신(金得臣)의 대장간에는 배경이 그려저 있는 점도 다릅니다. 그리고 김홍도(金弘道)는 묘사된 선의 세련미가 돋보이지만 김득신(金得臣)은 인물들을 재치있고 익살스런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