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산책

우리 미술관 옛그림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풍파소처(風波少處)

박남량 narciso 2019. 8. 17. 16:13


우리 미술관 옛그림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풍파소처(風波少處)>


화제(畵題)로 쓰여있는 문자 그대로 '바람과 물결이 적은 곳'이라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풍파소처(風波少處)라는 그림입니다. 잔잔한 물 위에 평화로운 표정의 한 선비가 배를 타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고, 배 위에는 학(鶴)이 머리를 뽑아 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배 안에는 낚시하는 선비의 아내와 자식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강가에는 버드나무가 잎을 드리우고 바람도 없어 수면은 잔물결만 일고 있으며 버들잎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월(越)나라의 재상인 범려가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후 공명을 피해 배에 가족을 싣고 떠났다는 고사를 그렸습니다. 세상의 풍파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어지러운 세상의 환란을 멀리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평화로운 삶을 갈구하는 선비의 소망이 그림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동양화에서 선비의 거처를 그린 그림을 보면 마당 한켠에 학(鶴)이 두 마리쯤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鶴)은 가금(家禽)이 아니므로 야생의 학(鶴)을 잡아 기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 후기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에는 야생(野生) 학(鶴)을 잡아 길들이는 법을 설명한 대목이 있습니다.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는 '금화(金華)에서 농사를 지으며 독서를 한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학(鶴)을 잡아와서는 그 깃촉을 잘라 날아가지 못하게 하고 뜰 가운데 며칠 두었다가 주리고 지치기를 기다려 조금씩 익은 음식을 준다. 이렇게 몇 달을 먹이면 마침내 길들여 기를 수 있다." 옛사람들이 학(鶴)을 무척이나 사랑한 나머지 야생(野生)의 학(鶴)을 잡아와서 깃촉을 자르고 마당에 놓아길렀던 것입니다. 학(鶴)의 고결한 자태를 마당 안에 들여두고 그로써 자신의 해맑은 정신을 가꾸려한 것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