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왜 사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박남량 narciso 2020. 5. 12. 11:51

왜 사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42년 빅터 프랭클은 고향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동북부로 가는 기차 안에 있었다. 정신과 의사이자 유대인이었던 그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그의 소중한 부모와 아내, 자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치 친위대가 그의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 놓는 바람에 생사마저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그는 매일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디고 빵 한 조각, 수프 한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하며 강제 노동에 혹사당했다. 수용소 생활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공포와 불안, 더러움, 굶주림, 추위까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누구는 배고픔으로 죽어 갔고, 누구는 전염병으로 죽어 갔으며, 누구는 매 맞아 죽었고, 누구는 가스실로 끌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빅터 프랭클은 언제 가스실로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예비 시체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자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였다.

뿐만 아니라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안다면 어떠한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쉽게 삶의 의욕을 상실해 버렸으며,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분명한 생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지옥 같은 하루하루, 사는 게 아니라 무조건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지났다, 마침내 전쟁이 끝난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생사 여부를 몰라 애태웠던 가족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모두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비보였다. 그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괴로워했지만 절망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 라는 책을 썼으며,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연구를 시작해서 로고테라피(Logotherapy)’ 즉 의미치료라는 심리 치료 이론체계를 세웠다.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상황이든 처할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신체 일부분을 잃을 수도 있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구나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에 머무를 것인지, 절망에서 빠져나와 희망을 되찾을 것인지는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꽃사진: 장미매발톱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