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어머니의 눈물

박남량 narciso 2015. 2. 21. 12:44


어머니의 눈물




게으른 아들을 둔 부모가 있었습니다.
고생하며 재산을 모았지만 아들은 일을 싫어했습니다.
부모의 재산만 믿고 거창한 계획만 세우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부추깁니다.
『이제는 재산을 물려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어요?』
남편은 말합니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전에는 재산을 주지 않을 작정이오.』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아버지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고는 돈을 주며 아버지께는 일해서 번 것이라 말하게 합니다.
며칠 후 아들은 아버지 앞에 돈을 내놓으며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일해서 번 돈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화로 속에 던져버립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깜짝놀랐지만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 아들은 어머니의 돈으로 또다시 말합니다.
『제가 일해서 번 돈입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불 속에 던져 버립니다.

그제야 어머니는 남편을 이해하고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구나. 네 힘으로 돈을 벌어 오너라. 미안하구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아들은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고는 험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아들은 어렵게 번 돈을 다시 아버지 앞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화로 속에 던져버립니다.
아들은 깜짝 놀라며 뜨거운 화로 속에 손을 넣어 돈을 꺼내며 외칩니다.
『아버지, 너무 하십니다. 이 돈을 버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아들이 눈물에 아버지는 손을 잡고 말합니다.
『이번에야 진정 내 아들을 찾은 것 같구나!』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할 이유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고생은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극복해 본 체험이 없으면 어른이 되어 혼란스러워합니다. 별 것 아닌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고생에 대한 면역이 없는 탓입니다.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은 여전히 어린이인 것입니다.

믿음의 길도 고생 없이 가려 하면 그렇게 됩니다.
신앙이 의무로 느껴지고 무의미해집니다.
좋아서 하는 신앙으로 바꿔야 합니다. 떠밀려가는 주일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신앙이 바뀌면 삶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성당은 친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처음 온 사람에게 냉정하다 합니다.
그래서 선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업하는 이들을 본받아 마케팅 전략을 세우자고도 합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입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단장해도 은총이 함께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분처럼 삶의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성당이 불편하고 사람들이 완고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의 길을 걷는 자세입니다.
아무도 나의 신앙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흔들려 방해받고 있을 뿐입니다.
억울할수록 십자가의 본질에 가까이 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겨운 일을 만납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져야만 은총이 함께합니다.
<신은근 신부님의 예화로 읽는 목음 묵상 '만남'>

<그림설명>
왼쪽의 다섯 명은 어리석은 처녀로 잘 차려입고 경박하고 허영기 있는 젊은 여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포도주를 마시는 여자, 잠들어 있는 여자 등 자신들만의 즐거움만을 만끽하는 등 여흥과 정돈되지 않은 그녀들의 마음가짐으로 신랑을 맞이할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른쪽의 다섯 명은 슬기로운 처녀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단정하고 절제 있는 소박한 젊은 여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십자고상이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여자,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있는 여자, 예수님의 수난 사진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는 여자 등 정갈한 여자의 마음을 나타내듯이 각자의 준비된 등잔들만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림 위쪽 중앙, 구름 위에는 황금빛으로 찬란한 하느님 나라가 그려져 있고 왼쪽 다섯 명의 어리석은 처녀는 문이 닫혀 밖에서 문을 열어 달라고 청하고 있고 오른쪽 다섯 명의 슬기로운 쳐녀는 양팔을 하늘로 올린 채 환희를 맛보고 있다.

열 처녀가 기다리고 있던 신랑은 그리스도를 말하며 혼인 잔치는 하늘나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표상한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

[히에로니무스 프랑켄 2세(1578-1623), <열 처녀의 비유>, 1616년, 캔버스에 유채, 에르미타주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Good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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