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농부가 우연히 매 알을 주웠습니다. 꿩이나 들쥐를 잡아먹는 송골매 알이었습니다. 집으로 가져가 닭장 속에 넣었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 매가 태어났습니다. 성큼성큼 자라더니 어정쩡한 매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동거지는 닭과 같았습니다. 닭처럼 꽥꽥거리고 가끔 파닥거렸지만 얼마 날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러고는 닭처럼 낱알이나 곤충을 먹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송골매 새끼는 하늘을 보다가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진짜 매를 발견하였습니다. 유유히 날고 있는 모습이 부러워 옆에 있는 수탉에게 묻습니다.
『저게 무슨 새냐?』
수탉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저게 바로 송골매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새지.』
『정말 대단해! 나도 송골매처럼 날고 싶어!』
수탉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꿈 깨. 우리 닭과 매는 근본적으로 달라.』
꿈을 포기하면 어정쩡한 매는 끝까지 닭이라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끈질지게 나는 연습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진짜 송골매가 되어 닭장을 박차고 날아갈 것입니다. 그에게는 매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식은 암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소문은 어느새 인간을 닭으로 옭아매고 있습니다. 지상의 것만 추구하게 합니다. 하늘의 것은 없는 듯이 외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송골매지 닭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기운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거짓 정보 앞에서 주눅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꿈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힘을 깨닫는 꿈입니다. 세상 안에는 그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언젠가 깨닫게 되면 사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삶은 감사입니다.
숨 쉬는 자체부터 감사드릴 일입니다. 목숨이 있다는 것은 은총이 함께한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자세를 지니면 삶의 어려움을 달리 보입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감사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잘못 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겉모습은 화려해도 속이 메마르면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산다는 생각은 대부분 유혹입니다.
잘 살고 있는데 누구와 비교해 잘못 산다고 생각합니다. 축복이 많은데 누구와 비교해 적다고 느낍니다.
상대적 빈곤입니다. 타인과 비교해 스스로 부족하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매스컴의 영향이 큽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은 호화로운 겉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은연중에 비교를 강요당합니다. 방심하면 스스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맙니다.
베푸는 생활이 처방입니다.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베풀 수 없는 처지에 있더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지상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에 닿을 수 있습니다. 삶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신은근 신부님의 예화로 읽는 복음 묵상 '만남'>
<그림 설명>
존 에버릿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부모 집에 있는 그리스도’, 1848년, 캔버스 위에 유화, 86.7x139.7cm, 테이트 갤러리, 런던/GoodNews
성서의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라는 대목을 표현함에 있어,
그 성장 과정을 성스러운 이미지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담고 있다.
바로 목수 아버지가 일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아름답거나 고상하지 않고, 이 공간을 점유한 사람들도 하루하루가 궁핍한 사람들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실제 삶의 공간과 현실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의 정중앙에는 못에 찔려 우는 아이를 엄마가 달래고 있다. 엄마는 아이의 고통이 무척 안쓰러운 마리아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의 찔린 손에서 피가 흘러 발등에 묻어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닌가?
목수 일을 하던 아버지 요셉은 일을 멈추고 아들의 손을 살피고 있으며, 할머니 안나 역시 손자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벽의 삼각자는 삼위일체를, 사다리는 야곱의 사다리, 그 위에 걸터앉은 비둘기는 성령이다.
오른편의 창가에 놓인 등잔은 겸허함을 나타내며, 왼쪽 외부 공간의 양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이고, 그 앞에 붉은 꽃은 예수가 이들을 위해 흘릴 피의 상징이다.
이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들의 일상. 돌아보면 궁핍하고 가난하며, 남의 시선도 동정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련 속에도 늘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이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은 있다 - 피에타<사순 묵상> (0) | 2015.03.16 |
---|---|
만남 그리고 영원의 아름다운 빛 (0) | 2015.02.27 |
포기하면 날지 못합니다 (0) | 2015.02.24 |
어머니의 눈물 (0) | 2015.02.21 |
빵 속에 든 금화 한 닢 (0) | 2015.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