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라는 고사성어 빈계지신(牝鷄之晨)

박남량 narciso 2017. 2. 10. 09:59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라는 고사성어 빈계지신(牝鷄之晨)



고대 중국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절세미녀 달기(妲己)에게 정신을 빼앗겨 그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놀이와 포락지형(炮烙之刑)이란 가혹한 형벌로 호사와 포악함이 극에 이르렀다. 허구한 날 주색을 즐기느라 바쁘다 보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주연을 베풀면서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일족들마저 돌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죄를 짓고 곳곳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썼다. 이런 자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어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殷)나라를 범죄로 문란해지게 했다.
결국 전국에서 반란이 잇따랐다. 이같은 혼란을 틈 탄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로 진군하여 주왕(紂王)을 쳤다. 이때 주왕(紂王)을 치는 명목으로 이렇게 외쳤다. 암탉은 달기(妲己)를 말한다.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은 집안이 망한다."

우리 속담인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활동을 비아냥거릴 때 이 속담이 동원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작태 중 하나로 일본의 아내들이 남편을 주인(主人)이라고 불러 스스로 암탉의 슬픔을 인정하고 있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구한말(舊韓末)에 이르러 일본 공사가 고종(高宗) 앞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에 빗대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한 사실도 있다.

옛 여성의 사회적 위치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삼종(三從)의 악법이다. 남녀는 귀천이 갈라져서 차별 대우를 받게 되었고 이것이 한 가정내에서 부내천(夫乃天)의 사상으로 연장되었고 남편을 소천(所天)이라 부르고 손님같이 공손히 받드는 것이 아내의 도가 되었다. 자기의 의견이 있어도 남편이 하는 일에는 용문(容吻)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며 모든 일에 복종해야만 했다.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윤리는 여자의 음성이 중문 밖으로 나가면 그 집이 망하느니, 암탉이 울면 안되느니 하는 터부로서 조선조 사대부들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암탉은 신라의 선덕여왕(善德女王 606 - 647)일 것이다. 한국사 최초의 국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일화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친밀감이 있는 여왕이다. 아들이 없는 부왕 진평왕(眞平王)의 뒤를 이어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일찍이 당나라에서 보낸 목단(牧丹) 꽃씨를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 예언한 식견이나 궁성인 연못에 모여든 개구리와 두꺼비 떼를 보고 적군의 내습을 예감하고 군사를 풀어 이를 섬멸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선덕여왕의 知幾三事)

그러나 말년에는 역적의 반란이 있어 이를 다스리려 했지만 결국 못하고 이 싸움은 다음 왕대에 평정이 되었다. 김부식이 서경(書經)의 빈계지신(牝鷄之晨)이란 말을 인용하여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라는 뜻이라하고 신라가 여자를 받들어 왕위에 올렸으니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이는 너무 유교에 젖은 고루한 편견이다. 왜냐하면 다음 왕이 진덕여왕으로 당당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경(書經)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빈계지신(牝鷄之晨)이다.

빈계지신(牝鷄之晨)이란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라는 뜻으로 새벽을 알리는 것은 수탉의 몫인데 암탉(牝鷄)이 새벽을 알린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