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임금 과 갈처사
숙종임금은 어머니가 명성왕후 김씨로 일곱 살 때에 왕세자에 책봉되어 열네 살 되던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했다. 숙종은 인현왕후와 인원왕후에 앞서 원비로 영돈녕부사 김만기의 딸인 인경왕후를 맞이했으며 제20대 경종을 낳은 장희빈과 제21대 영조를 낳은 숙빈 최씨 명빈 박씨 등을 후궁으로 두었다.
어느 날 백성을 살피러 시냇가를 지나다 한 시골 총각이 관을 냇가에 두고 슬피 울며 땅을 파는 게 아닌가. 숙종이 의아해서 물었다. 「 아무리 가난한들 물가에 묘를 쓰는가?」 「 어머니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처사라는 지관이 이곳이 명당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팔수록 물만 나오니 속이 탑니다.」 임금은 엉뚱한 곳을 명당으로 일러 준 지관이 괘심하고 총각의 처지가 불쌍했다. 궁리 끝에 그 자리에서 몇 자 적어 주며 총각더러 관청에 가서 전하라고 했다. 관청 사람들은 임금의 서찰을 받고 발칵 뒤집혔다. 높고 높은 어명이었던 것이다. 관청에서는 편지에 쓰인 대로 쌀 삼백가마와 명당자리 땅을 총각에게 내주었다.
한편 숙종임금은 평범한 선비 행색을 하고 갈처사를 찾아 갔다. 그는 가파른 산마루 밑 초가집 단간방에 살고 있었다. 「 그대는 무슨 연유로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 했소? 불쌍한 사람을 골탕 먹여도 유분수지.」 「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참견이요. 그 땅은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삼백석을 받고 명당으로 가는 땅이야.」 감짝 놀란 숙종은 좀 더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 그렇게 땅을 잘 보는 사람이 왜 허름한 곳에 사시오?」 「 또 모르는 소리. 여기는 나랏님이 찾아 올 명당이라는 말이오. 가만 내가 재작년에 받아 놓은 날이 있는데 앗!」
상황을 파악한 갈처사는 임금 앞에 엎드렸다. 그 뒤 숙종임금이 명을 다하자 갈처사가 그의 능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곳이 서울 서오릉에 자리한 명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