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묵상

수행자는 일평생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삶입니다

박남량 narciso 2017. 8. 16. 17:34


수행자는 일평생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삶입니다



한 수행자가 히말라야에서 홀로 고행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불교를 수호하는 천신인 제석천(帝釋天)이 그 수행자가 과연 부처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알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인 나찰(羅刹)의 몸으로 변신하여 내려와서, 수행자가 사는 근처에 서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구절을 외웠습니다.

"諸行無常(제행무상)  是生滅法(시생멸법)
이 세상 모든 일은 덧없으니  그것은 곧 죽고 나는 법이라네."

수행자는 이 시를 듣자 마음속으로 한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험상궂게 생긴 나찰(羅刹)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가진 것이 어떻게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 속에서 연꽃이 피고 뜨거운 햇빛 속에서 찬물이 흘러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알 수 없다. 혹시나 저것이 과거세에 부처님을 뵙고 그 시를 들었을지도."

수행자는 나찰(羅刹)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구절을 들었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그 여의주 보배의 반쪽을 얻었습니까? 나는 그것을 듣고 마치 망울진 연꽃 봉오리가 활짝 피듯이 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르오. 여러 날 굶은 끝에 허기가 져서 아마 헛소리 했나 보오."

"당신이 만약 그 시의 뒷 구절을 마저 내게 일러 주신다면 나는 평생을 두고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물질의 보시(布施)는 사라질 때가 있지만 법의 보시(布施)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구려.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지 남의 사정은 모르고 있소.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오."

"당신은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놀라지 마시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요. 그러나 그것을 구하지 못해 나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소."

"그럼 당신은 내게 그 나머지 시를 들려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다 듣고 내 몸뚱이를 송두리째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덧없는 몸을 버려 영원한 몸과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당신의 말을 믿겠소. 겨우 반쪽의 시를 듣기 위해 그 소중한 몸을 버리겠다니."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질그릇을 주고 칠보로 된 그릇을 얻듯이 나도 이 덧없는 몸을 버려 금강석과 같은 굳센 몸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나찰(羅刹)은 시의 후반부를 읊었습니다.

"生滅滅己(생멸멸기)  寂滅爲樂(적멸위락)
생사의 갈등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이 열반(涅槃)의 기쁨이어라."

수행자는 이 구절을 듣고 더욱 환희심이 솟았다. 시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한 뒤에 그 시를 후세에까지 전하기 위해 벼랑과 나무와 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아래로 뛰어 내리려 했습니다. 그때 나무의 신(樹神)이 물었습니다.

"그 시에는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 시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내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세상의 인색한 사람들에게 내 몸을 버리는 이 광경을 보여 주고 싶다. 조그만 보시(布施)로써 마음이 교만해진 사람들에게 내가 반 구절의 시를 얻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보여 주고 싶구나."

마침내 그는 몸을 날려 나무에서 떨어졋습니다. 그런데 그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나찰(羅刹)은 곧 제석천(帝釋天)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공중에서 그를 받아 땅에 내려 놓았습니다. 이때 여러 천신(天神)들이 운집하여 그의 발에 예배하면서 그토록 지극한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법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리는 지극한 구도정신이 마침내 불도를 이룬다는 구도설화입니다.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열반(涅槃)에 들기 직전 하루 낮과 밤 동안에 설하셨다는 최후의 설법인 열반경(涅槃經)에 실린 설산동자(雪山童子)의 설화로 법정(法頂)의 '인연(因緣)이야기'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위법망구(爲法忘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양식이 되는 소중한 가르침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경에도 가르침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유다는 주님의 곁을 떠납니다. 자신의 길을 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결과입니다. 전혀 다른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주님의 곁을 잠시 떠납니다. 그러나 돌아옵니다. 자신의 길보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택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 훗날 그는 이 약속을 지킵니다.<꽃사진: 토레니아,포우르니에리토레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