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소인이 대인의 웅대한 뜻을 알지 못한다는 고사성어 연작안지(燕雀安知)

박남량 narciso 2017. 1. 18. 12:50


소인이 대인의 웅대한 뜻을 알지 못한다는 고사성어 연작안지(燕雀安知)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은 이듬해 진(秦)나라 타도를 처음으로 외친 사람이 진승(陳勝)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남의 소작인으로 그날 그날을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신세였다. 어느 날 진승(陳勝)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언덕에 오르더니 한숨을 쉬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놈의 세상, 뭔가 뒤집어 놓아야지. 원, 이래가지고는 어디 살 수가 있나. 장차 내가 부귀한 신분이 되더라도 서로 잊지 말도록 합시다."

그러자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는 가운데 주인 역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는 지금 머슴살이하면서 농사짓는 몸이다. 어찌 부귀 따위를 생각하는가?"

주인의 면박에 진승(陳勝)은 또한번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燕雀安知 鴻鵠之志(연작안지 홍곡지지) 아아,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큰 뜻을 알겠는가?"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아들 역시  포악함과 사치는 아버지보다 더했다. 백성들은 살기가 어려웠지만 불만하여 항거하는 자에게는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이 두려워 불평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마치 들불과 같이 번져 나갔다. 그 불지른 역할을 한 것이 진승(陳勝)이었다.

진승(陳勝)은 양하(陽夏) 사람인 오광(吳廣)과 함께 징발되어 수비병으로서 북쪽 변방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큰 비를 만나 홍수로 도로가 막혀 버렸다. 행군은 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기한 내에 지정된 변방까지 가지 않는다면 엄격한 규율에 의하여 참형에 처해질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진승(陳勝)은 은밀히 오광(吳廣)과 도모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미 기한에 뒤늦었다. 목적지에 가서 도착해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다. 설사 참죄를 면한다 할지라도 우리들 중 죽는 사람은 열 명에 육칠 명은 된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한 번 반기를 들어 이름을 후세에 남기지 않겠는가?

이때 진승(陳勝)이 한 유명한 말이 "王侯將相 寧有種乎(왕후장상 영유종호)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는가?" 왕후나 장군이나 대신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들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농민봉기이다.

후에 사마 천은 진승(陳勝)의 이 같은 업적을 높이 사 사기(史記)에서 진승(陳勝)을 제후의 반열에 올려 기록함으로써 농민의 저항권을 인정했다. 이때부터 연작(燕雀)은 소인배나 하찮은 사람, 홍곡(鴻鵠)은 군자나 큰 뜻을 품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인다.

기러기나 고니(鴻鵠)는 예부터 군자의 상징이었다. 반면 제비나 참새(燕雀)는 기껏해야 땅위를 스치듯 날며 모기 따위의 보잘 것 없는 벌레나 잡아먹고 산다. 구만리 창공(九萬里蒼空)을 나는 기러기나 고니(鴻鵠)의 기상을 알겠는가.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연작안지(燕雀安知)이다.

연작안지(燕雀安知)란 제비와 참새같이 작은 새가 기러기나 고니와 같은 큰 새의 뜻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라는 말에서 나온 글귀로 소인이 영웅의 포부를 이해 못함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꽃사진: 더덕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