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살벌한 정치적 담판을 나타내는 고사성어 홍문연회(鴻門宴會)

박남량 narciso 2015. 6. 26. 10:23


살벌한 정치적 담판을 나타내는 고사성어 홍문연회(鴻門宴會)




항우(項羽 BC 232 - BC 202)는 시황제가 죽고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숙부 항량(項梁)과 함께 봉기하여 군사를 이끌고 주변 세력을 병합하였다. 후에 항량(項梁)이 장한(章邯)의 계책에 죽자 스스로 상장군이라 칭한 뒤 하북(河北)에서 장한(章邯)을 항복시키고 도처에서 진나라군을 무찔러 진의 세력을 소탕하였다.

유방(劉邦 BC 247 - BC 195)과 항우(項羽)의 걸출한 난세의 영웅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바로 홍문연(鴻門宴)이다.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항우(項羽)와 유방(劉邦) 사이에 흐르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연회로 초한지에서는 홍문지연(鴻門之宴), 홍문지회(鴻門之會)라고도 부른다.

항우(項羽)가 진의 세력을 소탕하는 동안 유방(劉邦)이 함양에 먼저 입성하여 함양왕이 되려하자 함양으로 진군하였다. 함양을 먼저 점령한 것은 유방(劉邦)이었다. 그러나 군사력이 항우에 미치지 못하는 유방(劉邦)은 함양의 모든 재물과 궁궐을 그대로 둔 패상(覇上)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항우(項羽)는 분노가 치솟아 신하인 범증(范增)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방(劉邦)을 칠 각오를 다진다. 이에 유방(劉邦)은 항우(項羽)의 숙부인 항백(項伯)을 통해 항우(項羽)를 만나 먼저 함양을 점령하였으나 궁궐과 재산 등 모든 것은 그대로 놔두고 패상(覇上)으로 물러나 진을 쳤다고 해명한다.

항우(項羽)가 모사 범증(范增)의 말에 따라 홍문(鴻門)이라는 곳에서 유방(劉邦)을 죽이려고 잔치를 열었다. 유방(劉邦)은 장량(張良 BC ? - BC 189)과 번쾌(樊噲BC ? - BC 189)와 함께 홍문으로 왔다. 연회의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자 범증(范增)은 이 기회에 유방(劉邦)을 죽이라고 일러준 후 항우(項羽)에게 눈짓을 하였지만 항우(項羽)가 마음을 결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범증(范增)은 항장(項莊)이라는 장수를 시켜 칼춤을 추다가 은밀히 유방(劉邦)을 죽이도록 하였다. 이를 알아챈 항백(項伯)이 변심하여 같이 칼춤을 추면서 어깨로 유방(劉邦)을 가려 주었다. 곧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의 장수인 번쾌(樊噲BC ? - BC 189)를 들여보내 항장(項莊)을 막았고 낌새를 알아차린 유방(劉邦)은 곧장 자리를 떠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삼국지(三國志)에서도 홍문연회(鴻門宴會)가 나온다. 한(漢)나라 왕실은 형태만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황제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고 조정의 권력은 모두 조조(曹操)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무렵 유비(劉備)와 그의 부하들은 조조(曹操)의 진영에서 지내고 있었다. 조조(曹操)를 타도하려는 계획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을 때 불온 분자들의 모임에 유비(劉備)도 가담하고 있음을 안 조조(曹操)가 어느 날 유비(劉備)를 식사에 초대하였다.

『유비, 자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으니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겠지. 지금 세상에서 영웅으로 꼽힐 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유비(劉備)로서는 조조(曹操)의 마음속을 읽을 수 없으므로 무심코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적당히 대답하니 웃어 넘기며 조조(曹操)는 가만히 유비(劉備)를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진짜 영웅은 자네와 이 나뿐일세!』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영웅에 대하여 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들이닥쳤다.

『칼춤이라도 추어보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조조(曹操)는 그들의 충심에 감복하면서 이렇게 답하였다.

『이곳은 홍문(鴻門)의 연회(宴會)가 아니니 칼을 들 필요는 없을 것이오.』


이 두 고사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홍문연회(鴻門宴會)이다.

홍문연회(鴻門宴會)란 겉보기는 화려한 잔치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살의가 가득차 겉과 속이 다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살벌한 정치적 담판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홍문연(鴻門宴), 홍문지연(鴻門之宴), 홍문지회(鴻門之會)도 같은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