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고사성어 나작굴서(羅雀堀鼠)
당(唐)나라 현종(玄宗 685-762) 통치 말년에 정치가 부패하자 변방의 안록산(安祿山 ?703-757)이 군대를 일으켜 당(唐)나라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당시 진원(眞源) 현령 장순(張巡 709-757)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 신하였을 뿐만아니라 재주도 많고 무인(武人)답게 담력 또한 컸으며 대의(大義)가
분명한 그런 인물이었다.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장순(張巡)은 군대를 동원하여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해 허원(許遠)과 함께 수양성(睡陽城)을 지키고 있었다. 이듬해 안록산의 아들 안경서(安慶緖)가 윤자기(尹子琦)를 보내 십만대군으로 장순(張巡)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러나 그를 따라 성(城)을 지키고 있는 군사는 겨우 삼천여 명에 불과하여 반란군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순(張巡)은 비록 병사의 숫자면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하였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지키려고 하였다. 자신만만한 반란군들은 갖은 방법으로 성을 공격하는가 하면 온갖 회유(懷柔)로 항복을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장순(張巡)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반란군에
포위된 지 며칠이 지나자 성 안에 비축해 놓은 군량미는 바닥을 드러냈고 군량미의 공급도 되지 않아 점점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장순(張巡)은 부하 남제운(南霽雲)을 보내 포위망을 뚫고 임회(臨淮) 태수 하란진명(賀蘭進明)에게 위급한 소식을 알리고 구원병을 요청하였지만 임회(臨淮) 태수는 장순(張巡)의 명성을 시기하여 그들의 위급함을 알고도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허기에 지친 병사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씹어 먹기도 하고 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지나작굴서 자개노이식)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아 먹기도 하였으며 또 땅을 파서 쥐를 잡아 먹기도 하였으며 갑옷과 활에 붙어있는 소가죽을 삶아서 굶주림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원병의 도움이나 식량 보충도 없는 상태에서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갔고 더 이상 성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장순(張巡)의 군대는 굶주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장순(張巡)은 반란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항복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항복을 요구하는 반란군들을
향하여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로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란군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장순(張巡)의 부하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죽음과 바꾼 충성심에 새삼 고개를 떨구게 되었다.
당서(唐書) 장순전(張巡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나작굴서(羅雀堀鼠)이다.
나작굴서(羅雀堀鼠)란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는다는 뜻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러 어찌할 방법이 없음을 비유하여 나타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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