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오면 푸대접의 설움을 받게 된다는 고사성어 처불하기 수불위취(妻不下機 嫂不爲炊)

박남량 narciso 2015. 4. 3. 10:46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오면 푸대접의 설움을 받게 된다는 
고사성어 처불하기 수불위취(妻不下機 嫂不爲炊)




중국 전국 시대 소진(蘇秦)이 공부를 마치고 고향인 낙양(洛陽)으로 돌아왔을 때는 늙은 어머니와 과부 형수가 있었고 뒤에 소진(蘇秦)과 함께 천하에 이름을 날린 바 있는 두 아우 소대(蘇代)와 소려(蘇勵)가 있었다. 소진(蘇秦)은 자기 재산을 팔아 멀리 각국을 돌아다니며 출세의 길을 찾으려 하자 어머니, 형수, 아내는 물론이요, 아우들까지 한사코 말렸다.

그래서 고향인 주나라에서나마 벼슬을 해 볼 생각으로 주현왕(周顯王)을 만나 당면한 문제를 일일이 이야기 했으나 주현왕은 그를 관사에 머물러 있게 할 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일년을 기다리다 화가 치민 소진(蘇秦)은 집으로 돌아오자 있는 재산을 다 팔아 좋은 옷과 수레와 말과 하인들을 구해 각국을 돌며 왕들에게을 달래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진나라로 가서 혜문왕(惠文王)을 설득했다. 혜문왕(惠文王)은 상앙(商鞅)에게 호된 꼴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외국에서 온 유세객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몇 해를 객지에서 보내는 동안 소진(蘇秦)은 돈도 떨어지고 옷마저 해어져 더는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수레와 말과 하인들까지 다 팔아서 겨우 노자를 마련한 다음 손수 보따리를 들고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의 그런 행세를 보고 혀를 차며 돌아앉고 ,
妻方織布 不肯下機相見
아내는 베를 짜고 있었는데 베틀에서 내려와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소진은 배가 고파 형수를 보고 밥을 청했다.
嫂辭以無柴 不肯爲炊
형수는 나무가 없다고 핑계하며 밥을 짓기를 거절했다.

소진(蘇秦)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는 홀로,
『내 한 몸이 가난하고 천해지니 아내는 나를 남편으로 대하지 않고, 형수는 나를 시숙으로 보지 않으며, 어머니도 나를 자식으로 생각지 않는구나. 이 모두가 내 잘못이다.』하여 한숨을 지었다.
 
소진(蘇秦)은 여기서 더욱 분발하여 귀곡선생(鬼谷先生)이 준 음부경(陰符經)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밤낮없이 읽고 또 읽으며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다리를 찔렀다. 일년을 계속하자 하루아침에 세상 이치가 환히 밝아 오는 것 같았다.

새로 자신을 얻은 소진(蘇秦)은 두 아우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두 아우들은 형을 위해 노자를 마련해 주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소진(蘇秦)은 六국의 재상을 한몸에 겸하고 종약장이란 전례없는 벼슬에 올라 세치(三寸)혀로 천하를 손바닥 위에 놀리듯 하게 되었다.
 
소진(蘇秦)이 일을 마치고 초나라에서 조나라로 돌아갈 때 그의 행차가 고향인 낙양(洛陽)을 지나게 되었을 때다. 각 제후들이 사신을 보내 그를 호송하는 바람에 의장대와 깃발이며 사람이 탄 수레와 짐을 실은 수레 그리고 호위하는 기마병 등 행차가 20리에 뻗어 천자의 행차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연도에는 환영나온 지방관리들이 먼지 속을 바라보며 엎드려 절을 했고, 구경 나온 남녀노소들은 이마에 손을 얹고 혀를 차며 부러워했다. 주나라 천자는 두려운 생각에 미리 사람을 시켜 길을 깨끗이 소제한 다음 대신들을 멀리까지 보내 소진(蘇秦)을 환영하게 했다.

소진(蘇秦)의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아들의 그 같은 모습을 보며 혀를 차고 감탄했다. 두 아우와 아내와 형수는 감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넙죽히 엎드려 그를 맞이했다. 소진(蘇秦)이 수레에서 그 형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何前倨而後恭也
형수께서 전에는 그토록 나를 푸대접하더니 오늘은 또 왜 이토록 지나치게 공손하십니까?』

그러자 형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位高金多
서방님께서 벼슬이 높고 돈이 많으신데 어떻게 무섭지 않겠습니까?』
 
소진(蘇秦)은 길게 한숨을 지으며,
『한 사람이 부귀와 빈천이 가족들까지도 이토록 다르게 만드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면 어떻게 六국 재상을 겸할 수 있었겠는가?』하고 천금(千金)을 흩어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언어(言語)에 능통(能通)하고 학문(學問)에 뛰어난 소진(蘇秦)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지 꼴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배틀에서 내려오지 않고(妻不下機) 형수는 밥을 지어주지 않았다는(嫂不爲炊)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처불하기 수불위취(妻不下機 嫂不爲炊)이다.

처불하기 수불위취(妻不下機 嫂不爲炊)란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오면 남은 물론이요 한 집안 식구들까지 푸대접을 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 말을 인용하게 된다. 이 말은 소진(蘇秦)의 형수가 한 이야기 위고금다(位高金多)와 함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감탄고토(甘呑苦吐) 그리고 염량세태(炎凉世態)를 가리켜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