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믿음이 돼지나 물고기 같은 미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고사성어 신급돈어(信及豚魚)

박남량 narciso 2018. 7. 23. 13:14


믿음이 돼지나 물고기 같은 미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고사성어 신급돈어(信及豚魚)




조선 고종 때 영의정이었던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저서인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수록되어 전하는 일화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과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절친한 사이였다.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그들의 교유(交遊)는 정중하면서도 친밀했다. 김득신(金得臣)이 친상을 당했는데 너무 가난한 탓에 제수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때마침 박장원(朴長遠)은 지방 관찰사로 발령이 나서 가는 길이었다. 그는 김득신(金得臣)이 상(喪)을 당해 슬픔과 어려움에 처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발령을 연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도울 수 없지만 나중에 대상(大祥)을 치를 때 모든 음식을 마련해서 보내겠다고 약속하며 길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대상(大祥)을 맞이했다. 2년이나 지났지만 김득신(金得臣)은 박장원(朴長遠)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당연히 어떤 음식도 준비하지 않았다. 집안사람들은 우려 섞인 얼굴빛으로 대상을 맞았다. 그러나 점심때가 지나도 음식은커녕 아무런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도 기별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사람들이 김득신(金得臣)에게 음식을 얼른 준비해서 대상(大祥)을 치르자고 권유했다. 한 지역의 관찰사로 간 사람이라면 바쁘게 지낼 것이고, 부임지로 가는 길에 한 약속을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정작 김득신(金得臣)은 태평했다.

한밤중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문을 두드렸다. 나가 보니 박장원(朴長遠)이 보낸 사람이었다. 박장원(朴長遠)은 며칠 전 제사음식을 김득신(金得臣)에게 보냈지만, 오는 도중 장맛비를 만나 늦어졌다고 했다. 신의를 저버렸다고 비난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떠올랐다.

예부터 믿음(信)은 仁義禮智(인의예지)와 함께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덕목으로 꼽혔다. 김득신(金得臣)과 박장원(朴長遠)의 일화에서 우리는 누구의 믿음이 더 뛰어난가를 따지지 않는다. 믿음이란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신급돈어(信及豚魚)와 관련하여 주역(周易)에 중부(中孚)라는 괘가 있는데 믿음은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파급된다고 하였다. 돼지나 물고기는 우리가 미물이라고 생각하고 잡아서 먹기도 하는 생물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믿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미물들에게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주역(周易) 중부(中孚)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신급돈어(信及豚魚)이다.

신급돈어(信及豚魚)이란 믿음이 돼지나 물고기 같은 미물들에게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입으로만 믿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이 중요함을 말한다. 신의가 지극함을 이르는 말이다.<꽃사진: 피라칸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