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쓴다는 고사성어 권모술수(權謨術數)

박남량 narciso 2014. 3. 21. 08:29



목적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쓴다는 고사성어 권모술수(權謨術數)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인정이나 도덕도 없이 권세와 모략과 중상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쓴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원칙도 없고 선악(善惡)도 없다. 필요에 따라 온갖 조치를 취한다. 권모술수(權謨術數)는 원칙과 윤리나 도덕에 기초하지 않으므로 결코 인간적인 신뢰를 쌓을 수 없다. 외양은 관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기심이 강하고 또 권모술수에 능했다는 삼국지에 실린 이야기가 있다.

사마중달(司馬仲達 179-251)의 이야기이다. 사마중달(司馬仲達)은 겉으로는 관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기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으며 권모술수에 능하고 본심을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는 음험한 성격의 소유자로 설명된다.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은 부하의 도덕성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오직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더 중요시한다는 이야기이다. 적당히 타락되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매수하여 자기 사람을 만들 수 있지만 도덕과 원칙으로 무장된 사람은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여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사마의(司馬懿)는 후한(後漢) 말에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온현(溫縣)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사마(司馬)씨는 지방의 명망가로서 형제 8명이 모두 달(達)이라는 아호를 갖고 있었는데, 차남인 사마의(司馬懿)가 중달(仲達)이다. 이 형제는 모두 수재들이었으므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마가(司馬家)의 팔달(八達)이라 불렸다.

사마중달(司馬仲達)은 팔달(八達) 가운데서도 출중하고 특히 병법(兵法)에 능했다.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던 조조(武帝 曹操 155-220)가 그 평판을 듣고 재빨리 등용했다. 위(魏)나라 무제(曹操)와 문제(文帝), 명제(明帝) 등 3대에 걸쳐 봉사하며 훈공을 세우고 신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고위직에까지 역임하고 마지막에는 안국경후(安國卿侯)라는 나라의 최고원로에 봉해졌다.

위(魏)나라 왕조는 사마중달(司馬仲達)의 손자인 사마염(司馬炎 236-290)에게 탈취당하고 진왕조(晉王朝)가 생겨났다. 사마염(司馬炎)은 실제로는 이 왕조를 만든 제일의 공로자가 조부였음을 알아채고 이를 역사에 남기는 의미로 조부(祖父)인 중달(仲達)에게 황제의 사후에 추증하는 존칭인 선제(宣帝)라는 칭호를 추증하였다.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젊은 장군인 조상(曹爽 ?-249)과 더불어 조정내의 2대 세력이었다. 그런데 경쟁자인 조상(曹爽)은 상당한 수완가이고 또 황족이자 장수로 공신인 조진(曹眞?-231)의 아들이고 가문도 사마(司馬)씨보다는 낫다. 조상(曹爽)은 유능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사마중달(司馬仲達)을 은근히 무시하며 권력의 독점을 꾀하게 되었다. 실권(實權)을 빼앗긴 사마중달(司馬仲達)은 병을 앓고 있다며 자신이 저택 안에 틀어박혀 버렸다.

병을 앓고 있다는 구실로 조의(朝議)에 나오지 않는 사마중달(司馬仲達)의 존재가 젊은 조상(曹爽)에게 있어서는 도리어 언짢게 느껴졌다. 수완이 좋은 늙은이가 혹시 뭔가 계략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조상(曹爽)은 심복인 이승(李勝)을 사마중달(司馬仲達)의 저택에 보내어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지만 얼굴에 생기가 없고 침을 흘리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녀가 차를 마시게 해주면 입이 오므라들지 않아 의복에 주르륵 흘려 버리곤 무엇을 물어보나 조리가 닿지 않아 종잡을 수 없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늙어빠져 망령기가 심한 것을 보고 조상(曹爽)의 심복인 이승(李勝)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 집을 나와 돌아와서는 사마공(司馬公)은 재기불능이라고 보고하였다. 조상(曹爽)은 완전히 안심하여 경계까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적을 기만하기 위한 철저한 연기였다.

완전히 안심한 조상(曹爽)은 황제를 수행화며 주요한 간부들을 이끌고 도성 밖으로 나갔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도래했다고 생각한 사마중달(司馬仲達)은 텅 빈 도성을 점령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고 조상(曹爽) 일당을 일망 타진하였다. 순간적으로 허를 찌른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였다. 이처럼 사마중달(司馬仲達)은 어디까지나 차갑고 의심이 많아 측근이나 가족에게도 좀처럼 본심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권모술수(權謨術數)가 요즈음의 정치에 많이 나타난다. 권세와 명리의 호화로움에는 가까이 않는 사람이 깨끗하다 할지라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욱 깨끗하다. 권모술수(權謨術數)를 모르는 사람은 고상하지만 이를 알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더욱 고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