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본체가 되어 있어 버릴 수가 없다는 고사성어 체물불유(體物不遺)
중용(中庸)에 나오는 글로 공자의 말이다.
鬼神之爲德(귀신지위덕) 其盛矣乎(기성의호) 視之而弗見(시지이불견) 聽之而弗聞(청지이불문) 體物而不可遺(체물이불가유)
귀신의 덕은 너무나도 왕성하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귀신, 예컨대 조상신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소리를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지만 사물의 몸을 이루므로 세계에서 빠뜨릴 수 없다.
중용(中庸)을 비롯하여 유학(儒學)에서는 신적 존재를 배제하지 않지만 오로지 신에 의지하여 인간이 자신을 수양하고 세상에 이상을 실현하지 않는다. 인간이 신적 존재에 약하게 의존할 수는 있지만 거의 전적으로 인간의 자체 힘에 의존한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신은 양념에 해당하고 인간은 식재료에 해당한다. 귀신이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소리를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주장을 놓고 보면 중용은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에 가까워 보인다.
체물(體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이 죽더라도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자취를 남긴다. 이 자취는 살아 있는 후손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 조상이 산 사람의 꿈에 나타나 바로 지금 닥쳐오는 위험을 알려주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려줄 수도 있고, 과거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책임 있는 사람의 꿈에 나타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할 수 있고, 원혼이 직접 현실에 나타나서 가해자를 응징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체물(體物)을 조상신을 비롯하여 귀신이 살아 있는 사람 또는 사물과 한 몸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중용(中庸) 16장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체물불유(體物不遺)이다.
체물불유(體物不遺)란 사물의 몸을 이루므로 세계에서 빠뜨릴 수 없다는 말이다. 즉 만물의 본체가 되어 있어 버릴 수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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