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마음이 욕심에 이끌리면 사람과 자연의 도리에 맞는 것인지 살피세요

박남량 narciso 2016. 10. 19. 16:02


마음이 욕심에 이끌리면 사람과 자연의 도리에 맞는 것인지 살피세요



김인복(金仁福)이라는 선비가 하루는 길에서 변두리에 사는 선비를 만났다. 그 선비는 눈에 띄는 일품의 수정 갓끈을 달고 있었으나 끈이 너무 짧았다. 인복은 타고 가던 말을 세우고 채찍을 들어 인사하며 말하였다.

"아, 정말 아름답군요! 그 수정 갓끈은 가히 천하 일품입니다. 내 가산을 기울여서라도 당신의 갓끈을 사고 싶습니다. 우리 집은 숭례문 밖 청파입니다. 내일 새벽녘에 배다리만 찾아오셔서 김인복이를 묻는다면 행길의 누구인들 모르겠습니까?"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만나기로 언약하고 헤어졌습니다. 이튿날, 인복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그 선비가 대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인복은 채마밭 머리에 평상을 내놓고 함께 앉아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집 논은 홍인문밖에 있는데, 볍씨 한 말을 뿌려 곡식 석 섬을 먹는다오. 게다가 집에는 산봉우리만한 소가 두 필이나 있다오. 이삼월이 닥쳐서 토양이 풀리고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졸졸 흐르면, 논을 갈고 써래질을 해서 물을 싣지요.

팔월, 논에 황금물결이 일면 초승달 같은 낫으로 베어 타작을 하고 방아 찧고 키질하여 옥처럼 닦아 솥에 넣고 불을 때어 기름이 자르르하게 밥을 지을 때, 그 구수한 맛은 혀끝을 감돌지요.

또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채마밭은 상추가 얼마나 잘 되는지 삼사월에 갈아 거름 주면, 이슬을 머금고 비를 맞아 연하고 싱그럽기가 그만인데 그걸 장에 담가 양지 바른 곳에 두면 달기가 영락 벌꿀이라오.

인천 바다에서 잡은 밴댕이를 사다가 기름간장을 발라 석쇠에 구우면 고소한 냄새가 코에 진동하는데 상추의 물기를 탈탈 털어 손바닥에 올려 놓고 윤기나는 쌀밥 한 숟갈을 뚝 떠서 고소한 된장을 얹은 위에 노릿노릿 구운 밴댕이를 올려놓고 쌈을 싸서 두 손으로 들어올려, 종루에 파루친 후 남대문이 열리듯이 입을 떠억 벌리고 밀어넣으면....."

그 순간 선비도 따라서 입을 떠억 벌리다가 짧은 갓끈이 그만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수정알들이 땅으로 우르르 굴러떨어졌다. 그러자 인복이 말하였다.

"우리 집에는 함경도의 세포, 충청도의 조면, 평안도의 명주, 남경의 팽금, 요동의 모단이 일곱간 다락에 차곡차곡 쌓였지만 나는 끊어진 갓끈은 살 수가 없소."

그 선비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이 절로 헤벌어져 군침만 줄줄 흘리며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일품의 수정 갓끈일지라도 끊어지면 쓸모가 없습니다. 선비는 갓끈을 비싼 값에 팔려다가 오히려 김인복(金仁福)에게 골탕을 먹었으니 참으로 어리석다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욕심을 부리다가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욕심이란 사람의 본성이라 그것을 억제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에 욕심이 생길 때 그것이 자신의 분수에 맞는 것인지 또 사람과 자연의 도리에 맞는 것인지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조선 후기에 문신 이원명(李源命 1807-1887)이 편찬한 야담 패설집 동야휘집(東野彙集)에 실린 글로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상장이/사람과 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요(堯)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許由)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鷦鷯巢於深林(초료소어심림) 不過一枝(불과일지) 偃鼠飮河(언서음하) 不過滿腹(불과만복)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우리를 쳐도, 결국은 한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고, 두더쥐가 강물을 마신다 해도 결국은 제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스스로 만족을 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온갖 부(富)가 내 것이 된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거기에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꽃사진: 유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