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고 번민하거나 노여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박남량 narciso 2016. 10. 10. 18:08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고 번민하거나 노여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어느 날 백(白)이 흑(黑)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그리 검고 칙칙하냐? 그런데도 왜 자신을 씻지 않느냐? 나는 희고 깨끗하니 내게 가까이 오지 마라. 나를 더럽힐까 두렵구나."

그러나 흑이 껄껄 웃으며 응수하였다.
"내가 너를 더럽힐까 두려운가? 네가 비록 스스로를 희고 깨끗하다고 여기지만, 내가 보기에는 희고 깨끗한 것이 썩은 흙보다 훨씬 더럽다."

이에 백이 화를 내며 대들었다.
"너는 어째서 나를 썩은 흙처럼 더럽게 여기느냐? 나는 맑고 흰 것이 금방 강물에 씻은 것과 같고 마악 가을 햇볕에 쬐인 것과 같다. 검은 연료도 나에게 누를 끼칠 수 없고 티끌과 흙의 혼탁함도 나를 더럽힐 수 없다."

그러자 흑이 다시 대답하였다.
"너는 자신을 깨끗하다 생각하고 나를 더럽다 여기지만 나는 너를 더럽다고 여기지 않으며 너를 깨끗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젊고 건강할 때 머리털를 검게 한 것은 나였다.

세월이 점차 흘러 예전의 검은 머리가 꽃처럼 하얗게 되고 흰머리가 반이나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거울을 잡고 족집게로 흰 머리털을 뽑는다. 희고 깨끗한 것이 사람들에게 기쁨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누를 끼치는 것이다.

또한 밝게 처신하면서 춣세한 자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너는 공명정대한 것으로 자신을 고상하게 여기고 기운이 맑고 깨끗한 것으로 훌륭하게 여기지만 더러운 흙탕물 가운데서 어떻게 먼지와 티끌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돈과 패물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그걸 하찮게 여길 수 있겠는가? 혼자서 고결한 체 하며 사람들을 굶주리고 추위에 떨게 하여 고생시켜서야 되겠느냐?"

그러자 백은 망연자실하여 묵묵히 서 있다가 한참만에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오늘은 진정 너의 시대인데 내가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백(白)만 존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흑(黑)만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백(白)이라 하여 무조건 흑(黑)을 욕하거나 또 그와는 반대로 내가 흑(黑)이라 하여 무조건 백(白)을 욕해서도 안 됩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남파(南坡) 홍우원(洪宇遠 1605-1687)의 남파집(南坡集)에 실린 글을 설성경의 <세상을 거꾸로 보는 관상쟁이> '흑과 백의 말싸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다양한 것입니다. 남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마세요. 학벌이 조금 좋다고 해서 능력이 조금 뛰어나다고 해서 남보다 조금 더 재력이 있다고 해서 자기를 내세우며 주장하다보면 어느새 덕(德)을 잃습니다. 덕을 잃으면 결국 몸과 마음이 외로워집니다. 남에게 나를 주장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남을 알아주면 남도 당연히 나를 알아주는 법입니다.

공자(孔子)가 학이(學而)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不患人之不己之  患不知人也(불환인지불기지  환불지인야)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걱정하라."<꽃사진: 클레로 덴드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