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설화

떠나버린 벗을 그리는 백일홍

박남량 narciso 2007. 7. 2. 15:55


떠나버린 벗을 그리는 백일홍



백일홍 꽃잎이 처음 자랄 때 모습은
옛날 시집 갈 때 신부가 쓰던 족두리 같다.
백일홍의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이다.

평화스러운 어촌마을에
해마다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나타나서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터전인 어장을 망가뜨리고
몹쓸 짓을 저질렀다.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를 달래기 위해서
해마다 마을처녀를 한 명씩 제물로 바쳤다.
올해는 김 노인의 딸이
제물로 바쳐지는 해였다.
김 노인은 늦게 얻은 딸과 외롭게 살고 있었다.



늙은 아버지와 눈물로 이별을 한 처녀는
곱게 몸단장을 하고는
두려움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단에 올라앉아 눈을 감았다.

「 잠깐 기다리시오. 내가 이무기를 처치하겠소」

그 때 이 마을을 지나던 젊은이가 나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자신있게 말하는
젊은 이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젊은이는 처녀로 변장을 하고 제단에 앉았다.
이무기는 작년과 똑 같은 시간에 나타났다.
이무기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젊은이를 삼키려고 할 때
그는 칼을 번쩍 뽑아 들고는
이무기의 머리를 쳤습니다.
머리 세 개 가운데 하나를 잃은 이무기는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면서
바다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특히 김 노인과 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소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제 목숨은 당신 것이옵니다.
죽을 때까지 곁에서 모시겠습니다.」

처녀는 젊은이에게 간곡히 말하였다.



젊은이는 처녀를
그윽히 바라보면서 말을 꺼냈다.

「 나도 처녀처럼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소.
나는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아들로서
명을 받들어 잃어 버린 여의주를
찾으러 내려 왔습니다.
그것을 찾아야만 결혼이 허락되니
백일만 기다려 주시오.
반드시 여의주를 찾아오리다.」

돌아올 때에 하얀 깃발을 달고 오면
여의주를 찾은 것이고
빨간 깃발을 달고 오면
실패한 것으로 알라고 하면서
젊은이는 배를 마련하여 떠났다.
처녀는 그 날부터 젊은이의 성공을 비는
백일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백일째 되는 날이었다.
처녀는 기도를 마치고 곱게 몸단장을 하고
수평선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옥황상제의 아들이라는 젊은이는
여의주를 찾아 하얀 깃발을 돛대에 달고
처녀가 기다리는 마을로 출발하였다.
돌아오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복수의 기회를 찾고 있는
머리 하나를 잃은 이무기를 만났다.
젊은이는 용감하게 싸워
이무기의 남은 머리 두 개도 잘라 버렸다.
이무기는 피를 뿜으면서 죽고 말았다.
이 때 붉은 피가 돛대에 달아 놓은
하얀 깃발을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젊은이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언덕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던 처녀는
수평선 위로
배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처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 깃발이 하얀 깃발이 아니라
붉은 깃발이 돛대에 달렸네.
아, 실패하고 말았구나 」

처녀는 백 일의 기도가 허사였음을 알고는
실망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젊은이는 자신의 약속 때문에
어이없이 죽은 처녀를
양지바른 언덕 위에 묻어주었다.
이듬해 봄에 새로운 싹이 돋아 나와서
그 싹이 자라
여름에 붉은 색의 꽃을 피우고
백일동안 지지를 않았다.



사람들은 처녀가
백일동안 기도한 정성으로 피었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고 한다.
백일홍의 꽃말은
떠나 버린 벗을 그리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