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에 처하면 다른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고사성어 처도불이(處道不貳)
조선 후기 편자·연대 미상의 한문설화집 <교수잡사(攪睡襍史)>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교수잡사(攪睡襍史)>란 문자 그대로 '잠을 깨게 하는 잡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라는 뜻으로 고금소총(古今笑叢)에 수록되어 있다.
풍채도 좋고 지모도 있는 무인(武人)이 있었다. 무과에 급제는 했지만 워낙 시골 출신이라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변변한 벼슬자리 하나 못 얻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다. 어느 날 꿩 한 마리를 구한 그는 당대 최고의 벼슬을 지내던 재상 집 앞으로 가더니 꿩의 눈에 화살을 꽂은 뒤 담장 너머로 훌쩍 던졌다. 그러고는 대문을 두드리고선 자신이 사냥을 하던 중이었는데 화살을 맞은 꿩 한 마리가 마당으로 떨어졌으니 그것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재상이 듣고 그를 불렀다. 마당을 찾아보았더니 과연 화살에 맞은 꿩이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눈을 맞춘 솜씨는 명궁이 따로 없었다. 흥미가 생긴 재상은 그 집안이나 환경을 물었다. 그러자 무인은 자신의 가문이 지체가 높았는데 근자에 몰락했다는 것이다. 무과에는 급제했지만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 한량으로 돌아다니고 집안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재상은 자기 집안에서 문객 노릇을 하며 지내라고 권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무인이 재상에게 아뢰었다.
"선전관(宣傳官) 자리가 비었다고 하옵니다. 대감께서 병조판서 어르신께 추천장을 써주시면 그 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사옵니다만."
재상은 그를 위해 추천서를 써주었지만 병조판서는 먼저 청을 받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다음 차례에 그를 등용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재상에게서 그 일을 들은 무인은 아무 대꾸도 없이 집을 나가더니 예전의 꿩 값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너무 황당한 요구에 화가 난 재상은 돈 한 냥을 집어 던져 주면서 다시 병조판서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 차례에도 그 무인을 등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 무인이 재상을 찾아왔다. 그는 선전관으로 등용되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하는 재상에게 무인이 말했다.
"제가 대감의 은덕을 어찌 잊겠습니까? 사실은 제가 무례한 행동을 일부러 했기 때문에 대감께서는 저를 등용하지 말라는 답장을 보내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답장을 받은 병조판서는 자기가 대감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 오히려 대감의 진노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청한 사람을 제치고 저를 먼저 등용한 것입니다. 제가 일부러 잔꾀를 내어 대감께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옵소서."
그의 지모에 감탄한 재상은 그를 심복으로 삼아 항상 주변의 일을 논의하였으며, 그 역시 재상의 후원으로 높은 벼슬에 등용되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계책을 만들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 잔꾀가 횡행하는 요즘 세태이다. 이야기 속의 선전관(宣傳官)이 어떤 일을 이루었는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지금으로서는 그의 토설대로 잔꾀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내 삶의 토대를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순자(旬子) 정명(正名)편에 도(道)에 처하면 다른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처도불이(處道不貳)란 말이 나온다.
辭讓之節得矣(사양지절득의) 長少之理順矣(장소지리순의)
/ 忌諱不稱(기휘불칭) 祆辭不出(천사불출) / 以仁心說(이인심설) 以學心聽(이학심청) 以公心辨(이공심변) / 不動乎衆人之非譽(부동호중인지비예) / 不治者之耳目(불치자지이목) / 不賂貴者之權勢(불뢰귀자지권세) / 不利傳辟者之辭(불리전벽자지사) / 故能處道而不貳(고능처도이불이)
/ 吐而不奪(토이부탈) 利而不流(이이불류)
/ 貴公正而賤鄙爭(귀공정이천비쟁)
/ 是士君子之辨說也(시사군자지변설야) / 詩曰(시왈) 長夜漫兮(장야만혜) 永思騫兮(영사건혜) / 大古之不慢兮(대고지불만혜) 禮義之不愆兮(예의지불건혜) 何恤人之言兮(하휼인지언혜) / 此之謂也(차지위야)
사양하는 절도(節度)를 얻고, 어른과 젊은이의 도리를 따르고 / 꺼리어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아니하며, 요상한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 어진 마음으로 말하고, 배우는 마음으로 남의 말을 듣고,
공평한 마음으로 시비를 분별한다. /
뭇 사람들은 비방이나 칭찬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 다스리는 사람의 귀와 눈을 혼란시키지 않으며 / 귀한 사람의 권세에 뇌물을 쓰지 않으며 / 돌아 다니는 편벽된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 능히 도(道)에 처하여 배반하지 않고 / 토론하되 남의 말을 빼앗지 않고, 이롭게 하되 음란한 데 흐르지 않고 / 공정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비루하게 다투는 것을 천하게 여긴다 /
이러한 것이 사군자의 변설인 것이다 /
<시경(詩經)>의 빠져있는 시에 이르기를,
길고 긴 밤 아득한데, 오래 생각함을 미워하네 / 옛날에 게으르지 않고, 예의에 허물이 없으면,
어찌 남의 말을 근심하리오."라고 하였는데 / 이것은 쓸데없는 변설을 하지 않는 군자를 말한 것이다.
순자(旬子) 정명(正名)편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처도불이(處道不貳)이다.
처도불이(處道不貳)란 도(道)에 처하면 다른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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