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흘리는 영의정 오리 이원익
선조, 광해군, 인조 세 국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으며 영의정을 여러번이나 지낸 이원익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태종의 왕자 익녕군 이치의 4 대손인 이억재와 어머니 동래군 부인 정씨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중기의 난국 속에 보기드문 충신이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왕위에서 �겨나고 한창 어지러운 시국이었다. 새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조는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했다. 당시 인조반정의 주도 세력들은 광해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원익은 광해군 밑에서 영의정을 지낸 자신도 떠나야 한다는 말로 인조를 설득해 광해군의 목숨을 구했다.
얼마 뒤 인조는 이원익에게 광해군 시절 부정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세도가들은 이원익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하루는 어느 세도가의 첩처럼 보이는 여인이 이원익의 집으로 찾아왔다. 무슨 일로 왔느냐는 질문에 여인은 그에게 작은 보따리를 내밀었다. 보따리를 풀어보니 값비싼 구슬이 박힌 보석 신발이 나왔다. 곧이어 여인은 제발 자기주인을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 말 없이 보석 신발을 보던 이원익의 눈에서 갑자기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뜻밖의 모습에 당황한 여인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 신하의 집에 이렇게 귀한 보석이 있었으니 어찌 나라가 어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헐벗은 백성들이 굶어 죽는 마당에 한낱 첩에게 이런 신발을 신기고도 살기를 바라다니.」
이원익은 당장 그 신발을 가져가게 한 뒤 그 세도가에게 엄한 벌을 내렸다.
이원익이 청백리로 칭송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재상의 자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이원익의 청렴한 성품을 잘 아는 인조가 재상의 가난함을 딱하게 여겨 비단 이부자리와 의복을 하사하셨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여러번 권함에도 사양하자 인조는 결국 이원익의 성품에 맞는 흰 무명 옷과 이부자리를 내려 그 깨끗한 마음가짐을 표창하였다고 한다.
벼슬의 자리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인조가 그대가 보이는 대로 모든 땅을 가지시오 라고 하였으나 이원익은 바늘 구멍으로만 보아 보이는 곳을 달라하였다고 한다.
여러 벼슬을 한 뒤 병의 악화로 사직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88세로 숨을 거두었다.
- 좋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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