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설화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쑥부쟁이를 아세요

박남량 narciso 2005. 3. 25. 16:11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쑥부쟁이를 아세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히 자라는 쑥부쟁이.



맨 처음 싹이 땅 위로 솟을 때는 붉은 빛을 띄지만

자라면서 녹색 바탕에 자주색을 띄는 쑥부쟁이.

7월에서 10월에 연한 자주색의 꽃이 피는

쑥부쟁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 가 봅니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11명이나 되는 자식들로 밤낮으로 일했지만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습니다.

쑥부쟁이라고 부르는 큰 딸이 있었습니다.

쑥을 캐러 다니는 대장장이 딸이라는 뜻에서

쑥부쟁이라고 불리어졌습니다.

쑥부쟁이는 먹을 것이 부족한 동생들의 배를

채워 주려고 열심히 쑥을 뜯으러 다녔습니다.

 


어느 가을 날

상처 입은 노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쑥부쟁이는 노루의 상처를 정성껏 치료하여

숲속으로 달아나게 해 주었습니다.

노루는 달아나면서 몇 번이나 인사를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소녀는 쑥을 가득 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한 사냥꾼을 만났습니다.

사냥꾼은 사람들이 짐승을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습니다.

소녀는 칡덩굴을 걷어다가 구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한양 박 정승의 아들인데 내년 가을에

아가씨를 찾아와서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사냥꾼은 씩씩하게 말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잘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쑥부쟁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사냥꾼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왔습니다.

이제 산에는 쑥이 없었지만

쑥부쟁이는 거르지 않고 산으로 갔습니다.

사냥꾼을 만날까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가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어머님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쑥부쟁이는 그리움에 근심까지 겹쳤습니다.

그녀는 목욕을 깨끗이 하고

산에 올라 산신령께 빌었습니다.

-신령님, 병들어 누워있는 어머니를 낫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한양에 산다는 사냥꾼도

만나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노루가 나타났습니다.

몇 년 전에 구해준 바로 그 노루였습니다.

노루는 노란 구슬 세 개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주었습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노루는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빌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이 낫게 해 주세요-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나았습니다.

쑥부쟁이는 근심을 털어 버리고

사냥꾼을 그리워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그녀를 잊었는지

몇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는 수없이 구슬을 이용했습니다.

-한양 사는 박 정승의 아들을 만나게 해 주세요-

거짓말처럼 그 사냥꾼이 나타났습니다.

-이제야 오셨군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제야 오셨어요-

-아가씨, 난 그 동안 결혼을 했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우리 함께 삽시다-

쑥부쟁이는 실망을 하였습니다.

사냥꾼은 자기를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냥꾼은 쑥부쟁이와 함께 살겠다면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남은 구슬 한 개를 입에 물었습니다.

 


-사냥꾼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양에는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가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를 한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쑥부쟁이는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냥꾼을 마음 속에 그리며

동생들을 보살피며 지냈습니다.

사랑이 너무 깊어진 소녀는

끝내 산등성이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산등성이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면서

기다림에 지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 후로 산등성이에는

많은 산나물이 돋아났습니다.

쑥부쟁이가 죽어서도 동생들을 걱정하여

산나물을 많이 돋아나게 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구슬처럼

노란 꽃술에 연한 보라빛 꽃의 목이 긴 풀꽃이

유난히 돋보였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그 풀꽃을

쑥부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쑥부쟁이의 꽃말은 옛 사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