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네가 해봤자, 얼마나 할 수 있겠니?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박남량 narciso 2019. 12. 13. 16:23


네가 해봤자, 얼마나 할 수 있겠니? 세상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한 남자가 도시에 있는 직장으로 매일 마을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한 정거장 지나 할머니 한 분이 같은 버스에 올라 창문 옆에 앉습니다. 할머니는 들고 있던 종이봉투에서 뭔가를 꺼내 가는 내내 창밖으로 던집니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같은 장면입니다. 남자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뭘 그렇게 던지세요?"
"씨앗이라오. 젊은이."
"무슨 씨앗이요?"
"꽃씨. 길이 너무 황량하지 않소? 주변이 메말라 보이는구려."
"하지만 뿌리신 씨앗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면 자동차 바퀴에 짓이겨질 것이고, 새들도 쪼아 먹을 텐데요. 싹을 틔울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요?"
"그래요. 젊은이. 씨앗들이 거의 다 제자리를 찾지 못할 거예요. 제대로 떨어지는 건 극히 적을 겁니다. 그것이나마 시간이 가면 싹을 틔우고, 싹이 나면 잎이 날 것이고, 잎이 나면 꽃도 피우겠지요."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 텐데요. 물도 줘야 하고·····"
"그래요.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비가 오는 날도 있잖겠습니까? 그러니 누군가 씨앗을 뿌리면 꽃은 필 거예요."

그러더니 다시 창문 쪽으로 몬을 돌려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남자가 내려야 할 때가 됐습니다. 걸어가면서 그는 할머니 연세가 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흘렀습니다. 남자는 계속 그 버스를 타고 직장을 다녔습니다. 어느 날 차창 밖이 훤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길가에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많은 꽃들이 피어 풍경이 아름답고 길은 향기롭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때아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버스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할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여 운전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 씨앗 뿌리던 할머니요?··········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남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꽃이 필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이렇게 핀들 할머닝게ㅔ 무슨 소용이래? 돌아가셔서 이 아름다움을 보실 수가 없잖은가.>

그 순간 왁자지껄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여자 아이들의 모란꽃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감동으로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어머나, 꽃들 좀 봐. 이 길에 이렇게 꽃들이 많을 줄이야. 너무 예쁘다. 저 꽃 이름이 뭐야?"

할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그분의 흔적으로 사람들은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다음 날 버스 창가에 앉아 종이 주머니에서 씨앗 한 주먹을 집어 창밖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은 이렇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안영옥의 <돈키호테의 말>에서 「한 알의 밀알」에 실린 글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주위에 있다면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네가 얻는 게 뭔데?'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러는 목적이 따로 있지?'라며 순수한 뜻을 왜곡하려 들 것입니다. '나랏님도 못하는 걸 네가 해?'라며 힐난할지도 모릅니다. 작은 일 없이 큰 일도 없습니다. 거대한 성벽이 돌 하나로부터 시작되듯, 한 사람으로부터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꽃사진: 백리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