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

남과의 대화에 쓰는 아름다운 말씨라는 고사성어 응대사령(應對辭令)

박남량 narciso 2017. 2. 23. 17:26


남과의 대화에 쓰는 아름다운 말씨라는 고사성어 응대사령(應對辭令)



당시 중국은 북쪽의 진(秦)나라와 남쪽의 초(楚)나라가 위세를 떨치며 주변의 약소국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정(鄭)나라 역시 약소국 중 하나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산(子産)이라는 재상이 취임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산(子産)이 재상으로 앉기 전에는 초(楚)나라가 세력을 뻗어오면 초(楚)나라와 손을 잡고 다시 진(秦)나라의 세력이 강해지면 진(秦)나라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외교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자산(子産)이 재상으로 취임하면서 정(鄭)나라의 외교정책은 비록 작은 나라일지라도 주장할 일은 단호히 주장하고 양보할 일은 망설이지 않고 양보하였다. 이제 정(鄭)나라는 작지만 함부로 깔볼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자산(子産)은 재상이 된 뒤에 빙간자(憑簡子), 자대숙(子大叔), 공손휘(公孫揮), 비심(裨諶)과 같은 현명한 사람들로 외교진을 구성했다. 빙간자(憑簡子)는 결단력이 뛰어났고, 자대숙(子大叔)은 풍채가 당당하여 사교술에 능하였다. 또한  공손휘(公孫揮)는 여러나라의 사정에 밝을 뿐 아니라 말과 글이 훌륭했으며, 비심(裨諶)은 지모(智謨)가 예민하지만 광활하게 넓은 곳이 아니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일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네 사람의 장점을 알고 있던 자산(子産)은 나라에 외교문제가 생기면 먼저 공손휘(公孫揮)를 불러 상대국의 정보를 확인하고, 이어서 외교문서를 만들게 하였다. 다음은 비심(裨諶)을 찾아 수레를 태워 멀리 성밖을 노닐게 하여 작전을 구상토록 하는 한편, 계획이 서면 빙간자(憑簡子)에게 검토시켜 결단을 내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한 뒤 마지막으로 자대숙(子大叔)을 사신으로 보내 상대국과의 외교절충을 하게 되니 하는 일마다 실패가 없었다.

이처럼 자산(子産)의 외교는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으며 훗날 응대사령(應對辭令)이란 글귀가 탄생하게 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재주가 있더라도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살아 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중요한 응대의 수단이 말과 글 즉 사령(辭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말과 뛰어난 글월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좌전(左傳)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응대사령(應對辭令)이다.

응대사령(應對辭令)이란 남과의 대화에 쓰는 아름다운 말씨 또는 아름다운 글로 된 편지를 뜻하는 말이다.
<꽃사진: 미니 호접란 고트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