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굴뚝새의 깊은 숲속 둥지도 하나의 가지면 충분합니다

박남량 narciso 2016. 4. 25. 12:03


굴뚝새의 깊은 숲속 둥지도 하나의 가지면 충분하다



요(堯)임금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약해지자 천자의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단주(丹朱)를 사랑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재목감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요(堯)임금은 천하를 다스리는 공적인 대의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후계자를 물색하던 요(堯)임금은 허유(許由)라는 현명한 은자(隱者)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허유(許由)는 바른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았고, 당치 않은 음식은 입에 대지 않고 오직 의를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요(堯)임금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그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태양이 떴는데도 아직 횃불을 끄지 않는 것은 헛된 일이요. 청컨대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

허유(許由)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鹪鷯巢於深林不過一枝(초료소어심림불과일지)  굴뚝새는 깊은 숲속에 둥지를 틀지만 단 하나의 나뭇가지면 충분하며, 두더지가 황하의 물은 마셔도 배만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자신은 지금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 왕의 자리는 사양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허유(許由)는 기산이란 곳으로 자신의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요(堯)임금은 다시 그를 찾아가 구주(九州)라도 맡아달라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허유(許由)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워낙 세상의 권세와 재물에 욕심이 없었던 허유(許由)는 그런 말을 들은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생각해 흐르는 강물에 귀를 씻었습니다. 때마침 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지나가던 소부(巢父)가 이 모습을 보고 허유(許由)에게 물었습니다.

"왜 귀를 씻으시오?"

"요(堯)임금이 나를 찾아와 나에게 천하를 맡아달라는구려. 이 말을 들은 내 귀가 혹여 더렵혀졌을까 하여 씻는 중이오."

이 말을 들은 소부(巢父)는 큰소리로 껄껄 웃었습니다.

"왜 웃으시오?"

"당신이 숨어 산다는 소문을 퍼트렸으니 그런 더러운 말을 듣는 게 아니오? 모름지기 은자란 애당초부터 은자(隱者)라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서는 안되는 법이오. 한데 당신은 은자(隱者)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게 아니요?"

그러고 나서 소부(巢父)는 소를 몰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한방 먹은 허유(許由)가 물었습니다.

"소에게 물은 안 먹이고 어딜 올라가시오?"

소부(巢父)가 대답했습니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어 올라가는 거요."

요(堯)임금으로부터 선양받아 후임은 순(舜)임금에게로 전해졌고 요순(堯舜)의 시대는 오늘날까지도 정치사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이야기거리가 서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몸부림치는 소식들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늘 절감하면서 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야기의 두 사람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까요.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탄의 우정입니다. 요나탄은 자기 희생을 통해 도약과 발전을 꿈꾸었습니다.그는 왕자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그러나 왕위를 잇지 못한 왕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우정과 조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역사의 뒤안길을 택한 숨은 현자가 요나탄이 아닐런지요.

요나탄과 다윗은 우정의 계약을 맺습니다.(1사무엘 18,3) 요나탄은 우정으로 종인 다윗을 주인인 자신과 동등하게 만든 후, 자기 아버지 사울에 의해 쫓겨나고 아버지 사울이 죽이기로 하여 광야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그를 높여 주고 자신은 낮추었습니다. 요나탄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고, 나는 자네 다음 자리에 있게 될 것일세"(1사무엘 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