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를 만나면 물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는 고사성어 감이후지(坎而後止)
시련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시련을 통해 삶은 더 성숙되고 더 아름다워진다. 시련이 오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기 보다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듯 평탄하던 삶도 늘 실패와 시련을 만나게 된다. 구덩이에 갇혀 자학, 절망하는 경우도 있고 물이 차서 넘칠 때까지 다듬고 단련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밀려났을 때 김포 가현산(歌絃山) 동봉(銅峰) 기슭에 한 칸 초가를 지었다. 계축옥사는 소북세력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한다고 대북 일파가 무고해 벌어진 정변(政變)이었다.
신흠(申欽)은 가현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덤불과 돌길에 막혀 웅덩이를 이루던 곳에 정착했다. 먼저 도끼로 덤불을 걷어 내고, 물길의 흐름을 띄웠다. 돌을 쌓아 그 위에 한 칸 띠집을 짓고, 내리닫는 물을 모아 연못 두 개를 만들었다. 한 칸 초가에는 감지와(坎止窩)란 이름을 붙였다. 감지와(坎止窩)의 감지(坎止)는 물이 구덩이를 만나 멈춘 곳이다. 와(窩)는 움집, 굴이라는 뜻이니 볼품없는 집을 말한다.
기운 좋게 흘러가던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 자리에 멈춘다. 발버둥을 쳐 봐야 소용이 없다. 가득 채워 넘쳐흐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애초에 구덩이에 빠지지 말아야 했지만 이미 빠졌으니 발버둥치고 허우적거려 봐야 소용없다. 이것은 물의 의지 밖의 일이다. 그는 감지와명(坎止窩銘)을 지어 소회를 남겼다. 일부 구절이다.
"時止而止(시지이지) / 上不及仲尼(상불내중니) / 援之而止(원지이지) / 下炸於士師(불작어사사) / 坎而後止(감이후지) / 其行恥也(기행치야) / 維心之亨(유심지형) / 其素履也(기소이야) / 止於所止(지어소지) / 竊庶幾樂天知命之君子(절서기락천지명지군자)
그칠 때 그친 것은 위로 중니만 못하고, 붙들어 그친 것은 아래로 사사(士師)에게 부끄럽다. 구덩이에 빠지고야 멈췄으니 행한 일이 부끄럽지만 마음만은 형통하여 평소와 다름없네. 그칠 곳에서 그쳐 낙천지명(樂天知命) 군자 되리라."
신흠(申欽)의 감지와명(坎止窩銘)에서 유래되는 고사성어가 감이후지(坎而後止)이다.
감이후지(坎而後止)란 구덩이에 빠지고야 멈춘다는 뜻으로 구덩이를 만나면 물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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