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자는 모든 생각 모든 일마다 스스로 가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어느 나라에 매우 교만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주경(天主經)를 외우는 이가 "하느님께서는 지위가 높다고 여기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서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은 올려 주신다."(집회 10,14)고 하는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지워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임금의 자리에 있지만 누가 나를 물리칠 것이며, 누가 나의 위로 올라가겠는가?"
며칠 뒤 임금은 온천욕을 하러 행차를 하였습니다. 방에 옷을 벗어 두고, 수행한 신하들이 모두 자리를 옮겨 떠난 뒤에 뜻밖에 임금과 용모가 닮은 천사가 나타나 임금의 보의(寶衣)를 입고는 횃대에는 헤어진 옷을 바꾸어 걸어 놓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신하들은 그를 임금이라고 생각하여 행차를 따라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임금은 목욕을 마친 뒤 신하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대답하는 신하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으려고 했더니 헤어진 옷만 있었습니다. 매우 괴이하게 생각하였으나 어쩔 수 없어 그것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행하였던 신하들을 찾아보았으나 이미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욱더 괴이하게 생각하면서 홀로 길을 떠나 궁으로 들어왔더니 그곳에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이상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며 총애하였던 신하를 보고 "너는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신하는 임금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임금'이라고 하였더니 그 신하는 비웃고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며 임금을 꾸짖으며 쫓아버렸습니다.
"이는 생각지도 못했던 근심이로다. 바로 전날의 교만한 말을 꾸짖는 것이로다."
임금은 근심과 고달픔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깨우치고는 후회하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날의 죄를 뉘우치고 고필 것이라고 맹세하며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 뒤 밤이면 궁으로 들어가 늘 전날의 영화와 행복, 그리고 오늘의 모욕과 고통을 생각하면서 슬픔과 한스러움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신하들이 모두 흩어져 간 뒤, 천사가 나와서 임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제 온 세상의 나라들을 주고 빼앗는 권능이 하느님에게 있으며, 하느님은 결코 무력을 사용하여 빼앗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가?"
천사의 물음에 임금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았고 몸으로 받았으니 어찌 감히 의심하겠습니까?"
이에 천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 너의 옷을 입혀 주고, 너의 자리로 올려주겠다. 그러나 앞으로는 마땅히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을 공경하고 믿어야 할 것이며, 교만한 말을 하여 달리 무거운 재앙을 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임금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궁전과 조정 안팎에는 이를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뒷날 임금이 스스로 그것을 이야기하였으므로 마침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스페인 출신의 예수회 판토하(D. Pantoha 1571-1618) 신부가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뿌리와 이를 극복하는 일곱 가지 덕행을 다룬 <칠극(The Sever Victories 七克)>에 실린 글입니다.
교만은 분수에 넘치는 영화를 바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선(善)이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고,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며, 남을 경멸하며 자신은 뭇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만의 시작은 죄악(집회 10,13)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오만을 쌓아두고 있으면 덕(德)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꽃사진: 꽃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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